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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진영논리에 갇힌 집권층…선진국 올라설 강력한 의지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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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로 인기가 높은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이 인터뷰를 하며 우리나라 집권층이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인터뷰에는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가 함께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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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사 처음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욕망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권층은 진영논리에 갇혀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고 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며 실천하는 철학자로 인기가 높은 최진석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61)은 "중진국에 올랐던 남미 여러 국가가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해 국력이 하강했던 것을 목격했다"며 우리나라 역시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걸 안타까워했다. 최 이사장은 작년 말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이 통과된 직후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하며 현상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부를 비판해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상아탑을 뛰쳐나와 철학에 기반한 시민교육을 펼치는 최 이사장을 만나 코로나19 이후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이날 인터뷰는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모두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궁금해한다. 어떻게 보나.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문명이 새로 나와도 과거에 익숙한 사람은 새로운 문명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때 사람들로 하여금 새 기술문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강제하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바로 팬데믹과 전쟁이다.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했던 페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도 문명의 변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온라인 회의나 원격의료, 원격교육 등 '언택트'라는 새로운 문명이 빠르게 확산돼 자리 잡을 것이다.

―코로나19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우리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이제 '미래'가 될 것이다. 이 세상 어떤 비극적 사건이라도 이미 발생한 뒤에는 중립적인 게 된다. 발생한 이후에는 더 이상 좋고 나쁘고의 판단을 넘어선다. 코로나19도 이제 나쁘고 좋고 하는 걸 따질 상황은 아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만 남았다. 코로나19 극복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해 선진국으로 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아닌가.

▷아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채 중진국적 사유 수준에 갇혀 있다. 우리보다 앞서 중진국 함정에 빠졌던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칠레 등이 중진국에 도달했다가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국력이 하강했던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까지 올라가지 않았나. 우리나라도 중진국 최상위 레벨까지 올라섰지만 지금의 사유 수준이나 삶의 방식을 업그레이드하지 않는 한 하강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일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선진국은 선도력이 있는 나라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820년대 이미 국제질서의 큰 틀이 자리 잡혔다. 전 세계가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이후로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추락한 사례가 없다. 마찬가지로 당시 후진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예도 없다. 그 이유는 선진국그룹은 선도력을 갖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앞서나가는 반면 후진국그룹은 따라하는 게 습관이 돼 선도력을 갖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잘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너무나 답답하다. 정부는 시대의 급소를 건드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덜 중요한 일만 벌이고 있는 꼴이다. 진영논리에 갇혀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꼭 지금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진영 레벨의 지도자만 줄줄이 나왔지, 국가 레벨의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으로 가는 길은 없을까.

▷사회적 갈등 해소는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갈등 구조 위에 서 있는 집권 세력이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 집권 세력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둘 다 어렵다.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현재의 집권 세력이 한 차원 높은 어젠다로 국정을 이끌라고 제안하고 싶다. 갈등은 기존 어젠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어젠다 자체를 한 차원 높은 것으로 설정하면 갈등 해소와 통합이 가능해진다. 그게 바로 선진화다. 선진화 어젠다를 수준 높게 제시하고 국민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선도국가로 만들어보자는 강력한 의지를 갖는 것이다. 도약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됐어' '여기까지 오든 데도 힘들었어' 하는 자세로는 안된다. 여기까지 잘 왔으니 한번 더 힘을 내서 민족사 처음으로 선도력을 발휘해보자는 야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패러다임이 깨지지 않으면 후발 주자인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것이다. 패러다임이 깨지는 이 상황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우리가 전략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게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패러다임이 깨지는 지금 우리 국력이 가장 강한 때이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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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힘들어한다.

▷우리 청년들이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자. 어느 시대의 청년들이라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어떤 청년은 태어나 보니 나라가 없었고, 어떤 청년은 먹을 게 없어 늘 배가 고팠다. 어떤 청년은 군사독재 아래서 국가의 폭력이 일상이던 시대를 살아야 했다. 모든 청년은 자신의 시대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 안고 태어나게 마련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자신의 과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 앞에 펼쳐진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하려고 용맹스럽게 덤벼야 한다.

―청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청년들은 황당무계할 정도로 큰 야망을 가져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너무 합리적이고 잘 정비되려고 노력하는 건 매력이 없다. 황당무계하려면 울퉁불퉁하고 무모하고 제어가 잘 안될 정도로 동물적이어야 한다. 중국이 한때 화약과 나침반 등의 기술문명으로 세계를 제패한 적이 있지만 기술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엄청난 상상력을 기반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서구에 패권을 내줬던 걸 기억해야 한다.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생각하지 않고 따라하는 삶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삶으로 건너가야 한다. 생각하는 삶으로 넘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독서보다 좋은 건 없다. 독서는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을 주고 그런 지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내공도 갖추게 해준다. 책읽기는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수련이다.

―최근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 읽기를 공개적으로 추천했는데.

▷동물농장을 보면 돼지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선동해 혁명에 성공한다. 그런데 결국 돼지들이 선민의식에 빠져서 완장을 차고 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돼지가 독재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주는 토대가 바로 다른 동물들의 무지다. 생각하지 않는 대중이 독재의 토양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 것 역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유의 고갈이 평범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건 무엇인가.

▷세상에 등장하는 것은 전부 생각의 결과다. 선진국이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 건 생각을 통해 문물을 새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남이 만들어낸 결과를 받아서 살고 있다. 생각한다는 건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발견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이다. 이래야 비로소 지적 활동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질문이다. 우리는 남이 해결해놓은 결과를 외워서 정답에 맞추려는 습관에서, 질문을 하려는 도전적인 습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은 여전히 답하는 걸 가르치고 있는데.

▷질문을 하게 하려고 내일부터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할 수 있는 내면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학교에서 글쓰기와 운동, 기하학 세 가지를 잘 가르쳐야 한다. 글쓰기와 운동은 둘 다 자기를 표현하고 발견하는 훈련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도형이나 숫자, 상징을 통해 다루는 기하학은 과학의 핵심인 '감각을 넘어선 세계'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익히게 한다. 이걸 익혀야 현재를 넘어서려는 꿈을 갖게 되고, 황당무계해진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선 세 가지를 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생명자본주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무엇인가.

▷나는 생명은 자기를 자기로 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생명력 있는 삶이 된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산다든지, 내가 아니라 이념을 위해 산다든지 하는 건 생명력이 없는 삶이다. 나를 나로 살게 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건 생명력 있는 것이지만, 대학 입학 자체가 목적이 되는 교육이면 생명력이 없는 거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는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계속 묻게 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로 세상에 등장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최진석 이사장은…

△1959년 전남 함평 출생 △광주 대동고 △서강대 철학과 △베이징대 철학 박사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인문학 운영위원 △(사)새말새몸짓 이사장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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