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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文 '입양취소' 발언 후폭풍…"넌 고아다" "학대받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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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 때 목사 가정으로 입양된 김찬수 씨(20)는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으로 짙어진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 남매 중 셋째로 자랐다. 작은형을 제외하고 큰형과 막내 여동생 모두 입양됐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입양 사실을 알고 자랐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며 "처음엔 친구들이 놀라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차별 안 하냐'는 질문도 들어 봤지만 지금은 평범한 가정인 걸 다들 안다"고 말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자랐지만 어린 시절 주변에서 편견을 갖기도 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친구에게서 "넌 고아다" "생모가 널 버려서 불쌍해서 지금 부모님이 키워주는 거다"란 폭언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싸움이 붙었는데 친구 부모님까지 찾아와 "부모가 어떻게 가르쳐서 이렇게 폭력적이냐"고 다그쳤다고 한다. 김씨는 "입양 사실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고 당당했기 때문에 크게 상처를 받거나 우울하진 않았다"며 "오히려 '아주머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셨길래 이런 말을 하냐'고 반박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출생의 비밀'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국내의 많은 입양인이 어릴 때부터 본인의 입양 사실을 알고 자란다. 중학교 2학년인 김예린 양(14)도 어릴 때부터 공개입양 가정에서 자라며 같은 입양인 친구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있다. 김양은 "부모님은 제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셔서 행복하다"며 "세 살 차이 나는 오빠와도 사이좋게 지낸다"고 말했다. 또 "학교 친구들도 내가 입양됐다는 이유로 놀리거나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인이 사건으로 촉발된 입양 자녀에 대한 상습적인 학대와 편견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판적 여론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입양 취소'를 언급했다. 정인이 사건 원인으로 학대가 아닌 입양을 지목한 것이다. 이후 입양 자녀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중요한 건 학대 여부이지 입양 자체가 아니다"고 비판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3만45건 중 입양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은 94건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의 화살이 애꿎은 입양가정을 향하면서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다. 김씨는 "가정을 꿈꾸는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백화점에 전시된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소중한 아이들"이라며 "정책을 만들 때 실제 가족의 의견을 구한다거나 사례들을 찾아보고 전문가 조언이라도 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입양 취소' 발언은 입양 과정 현실을 모르는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한부모·입양 아동 관련 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19일 전국입양가족연대 등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르면 배워야 한다. 단 한 번도 입양 가족과 얘기해 봤거나 현장을 돌본 적 있느냐"며 "새로운 엄마·아빠를 만나고 싶어하는 말 못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문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밝혔다. 또한 "대부분 입양 가족은 입양 전제 위탁을 통해 매우 안정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만족한 입양가정으로 살아간다"며 "한부모·계부모 가정에서 학대가 일어난 이유가 한부모·계부모여서가 아니다. 그냥 학대는 학대하는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최재형 감사원 원장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최 원장은 판사 시절이던 2000년과 2006년에 두 자녀를 입양했다. 그는 2011년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양은 부모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아동을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대통령 말처럼 입양인을 마음대로 취소하거나 바꾸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며 "입양 전에 철저히 입양 부모를 모니터링하고 결정 후엔 출산과 똑같이 무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창희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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