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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상하 삼양 회장 타계…'남쪽 언덕(南皐)'처럼 따뜻했던 '재계 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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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 20일 타계…향년 95세
최장수 대한상의 회장 역임…농구협회장 재직 동안엔 한국 농구 중흥 이끌어

조선비즈

고(故)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삼양그룹 제공



20일 타계한 고(故)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제당 산업과 화학섬유 산업의 개척자로 통한다.

1926년 삼양그룹 창업주인 김연수 회장의 5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삼양사에 입사한 뒤 김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지금의 삼양그룹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1950~1960년대 삼양사의 제당, 화섬 사업 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울산 제당 공장,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건설 현장을 지휘했다. 삼양사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에는 폴리에스테르 섬유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전분 및 전분당 사업에 진출해 식품 및 화학 소재로 삼양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현재 삼양의 화학소재 사업은 그룹을 대표하는 주력 사업으로 성장했다.

1996년 삼양그룹 회장에 취임하고서는 패키징과 의약바이오 등 삼양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했다. 고인은 현장 경영을 중시했다. 제조업의 근간은 '품질 좋은 물건을 생산해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고인은 매달 한 번은 공장을 찾아가 생산 현장을 살폈다.

고인의 호는 남고(南皐)다. '따뜻한 남쪽 언덕'과 같은 삶을 추구했던 고인은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임원에게 기업 환경이 일시적으로 나빠졌다고 직원들을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며 인원 감축을 백지화하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회사에서 나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다"고 말했다.

산업보국을 위해선 인재 육성이 필수라고 생각했던 고인은 2010년 양영재단, 수당재단, 하서학술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인재 육성에 힘썼다. 고인은 2015년 출간한 회고록 '묵묵히 걸어온 길'에서 "사업이란 제조업을 통해 산업보국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인재 육성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성이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이것은 아버지가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으며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이 외에도 대한상공회의소장, 대한농구협회장,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한일경제협회장, 환경보전협회장 등 여러 단체를 이끌며 대한민국의 경제, 체육, 환경,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88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뒤로는 12년간 재임하며 최장수 회장으로 남았다. 1985년 처음 맡은 대한농구협회장도 12년간 도맡았다. 이 동안 한국 농구는 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 출범 등 중흥기를 맞았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1975), 국민훈장 무궁화장(2003) 등을 수훈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내 박상례 여사와 아들 김원 삼양사 부회장, 김정 삼양패키징 부회장 등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이며, 발인은 22일 오전 8시 20분이다.

윤희훈 기자(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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