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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유레카] 삼성의 ‘횡령·배임 이중잣대’ / 김회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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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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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 20일 주식시장에 ‘횡령·배임 사실 확인’의 건을 공시했다. 이틀 전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판결 내용을 유가증권시장 공시 규정에 따라 시장 참가자들한테 알린 것이다. 사실 확인 내용은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임직원 5명의 일부 유죄’이며, 횡령 등 금액은 86억8081만원, 자기자본(262조8804억원) 대비 0.003%라고 적시했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을 삼성전자가 새삼스레 공시한 건 강화된 공시 규정 때문이다. 이전엔 횡령·배임 규모가 자기자본의 5%(대규모 법인은 2.5%) 이상만 공시 의무가 있었지만, 2015년부터 횡령·배임 혐의는 규모와 관계없이 반드시 공시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임직원의 횡령·배임 공시를 한 건 모두 8차례다. 그중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횡령·뇌물 사건 관련이 5건이다. 특검이 공소를 제기한 2017년 ‘혐의 발생’ 공시를 시작으로 1·2심과 상고심, 이번 파기환송심까지 재판 선고 직후 이뤄졌다. 나머지 3건은 2016년 이아무개 전무를 영업비밀 유출 및 허위 경비 청구 혐의(업무상 배임)로 수원지검이 기소한 사건 관련이다. 핵심 혐의인 자료유출 혐의는 무죄가 났고, 허위 경비 청구만 유죄로 인정됐다. 그의 배임액은 7800만원, 자기자본 대비 0.00004%다.

눈에 띄는 건 회사의 ‘향후 대책’이다. 삼성전자는 검찰이 이 전무를 기소하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 뒤엔 “본건과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이 부회장의 경우엔 조금 달랐다. 특검의 기소부터 파기환송심까지 “향후 제반 과정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5차례 모두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임직원의 불법에는 기소 단계부터 발 빠르게 조처를 약속하더니, 총수의 경우엔 사실상 최종심이 끝난 뒤에도 ‘진행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어물쩍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횡령액은 이 전무의 배임액보다 100배를 훌쩍 웃돈다. ‘86억 횡령’과 ‘7800만원 배임’ 중, 적법한 조처와 재발 방지가 시급한 건 어느 쪽일까.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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