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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25번째인데…또 '특단의 부동산 대책'? [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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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또 부동산대책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됐다.

공허함에 마음이 무겁다. 매번 실패가 예견됐지만 정부는 오기를 부렸고 후과는 늘 국민 몫이었다.

문재인정부는 3년여간 24차례나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2017년 정부 출범 후 한 달여 만에 내놓은 6·19대책이 시작이었다. 내내 독한 규제 일변도였다. 부작용으로 3년 반 만에 시장은 초토화하고 시민들 시름은 깊어졌다. 그런데 지금 다시 25번째 대책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설 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단언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과연 또 '특단의 대책'이 있을까.

무려 24차례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모조리 썼다. 헌법 침해 여지가 있는 카드까지 뽑아들었다. 그 바람에 지금 '민간 분양가상한제'나 '임대차법'은 물론 세법들도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정책 실무자들에게 질문했다. 관계 부처의 한 공무원은 "특단의 대책이란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은 "도대체 누가 저런 문구를 대통령 원고에 써 넣었냐"고 기자에게 물어볼 정도다. 대통령의 '특단의 대책' 한마디는 담당자에겐 '특단의 명령'으로 탈바꿈했다. 이들이 자리를 보존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특단'을 급조해내야 한다.

대통령은 2019년엔 "부동산 문제 자신 있다"고 말해 망신을 당했다. 제대로 된 참모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올해 "특단의 대책이 있다"는 보고는 막아야 했다.

내내 이런 식이었다. 24번 대부분 이렇게 급조됐다. 심지어 전국을 들쑤시고 있는 임대차법은 공청회는커녕 법안심사소위조차 거치지 않은 날림이었다. 시장과 전문가 얘기는 듣지 않았다. 졸속 정책이 안됐다면 그게 신기한 일일 거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변창흠 국토부 장관 팀은 25번째 대책으로 역세권 용적률을 상향하고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윤곽을 잡았다. 여기에 3기 신도시 때 빠졌던 광명 등의 추가 택지개발 카드도 검토 중이다. 홍·변 팀은 이 정부가 고집했던 수요억제 노선을 탈피해 시장이 원하는 공급 쪽에 비중을 뒀다. 이제야 정신 차린 셈이다. 그런데 이런 '정상'적인 대책은 '특단'이 아니다. 이제 뭔가 자극적인 것을 꾸미다 또다시 악수(惡手)가 튀어나올 판이다.

제발 '특단'에 미련을 버리라. 1년여 남은 정권이다. 주택 공급은 최소 3~4년의 시차를 둔 과업이다. 4년간 쌓인 실패를 '특단의 대책' 한 큐에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 또 무리수를 이어갈 것인가. 홍·변 팀은 경제를 책임진 사람답게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이런 식은 어떤가.

"국민 여러분, 4년간 이어진 잘못된 정책을 한 번에 되돌릴 즉효약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말씀하신 '특단의 대책'은 국민께 편안한 주거를 드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장 올해 집값을 내린다는 약속은 못 해도 마지막까지 미래를 위해 집중하겠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세대가 이어져도 주거가 안정되도록 문재인정부가 기틀을 닦겠습니다. 실패했던 대책들은 잘 복기해서 우리 아들딸들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분명히 하겠습니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조차 이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이 8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급조한 '특단의 대책' 남발의 후과는 국민 몫이다. 제발 25번째부터는 더 이상 '대책'을 붙이지 말라. 국민은 더 이상 몇 번째인지 세고 싶지 않다. 언론도 대책 기사 그만 쓰고 싶다. 정권 4년 차에 필요한 것은 '특단의 대책'이 아니라 '조용한 마무리'다. 국민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도록 규제를 하나하나 조용히 없애가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김선걸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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