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연합시론] 비혼·동거커플 '가족' 인정 추진…충분한 공론과정 거쳐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비혼이나 동거 커플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주목된다. 결혼제도 밖에 있는 다양한 가족 구성을 보장하고 친밀성과 돌봄에 기반한 대안적 관계를 토대로 한 새 형태를 법 제도 안의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이다. 여가부가 마련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2021~2025)에 담긴 내용이다. 현행 민법 조항은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각종 가족 정책의 토대인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는데 이런 틀을 깨자는 것이다. 여가부는 자녀의 성(姓)을 정할 때 아버지의 성을 우선하는 기존의 원칙에서 벗어나 부모가 협의하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 변경도 추진키로 했다. 급격히 진행되는 가족 개념 등 사회상 변화에 따라 뒤따라야 할 법과 제도 정비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형적인 가족으로 인식되던 '부부와 미혼 자녀' 가구 비중이 2010년 37.0%에서 2019년 29.8%로 감소했다고 한다. 비혼 가구나 동거 등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얘기다. 법 규정과 달리 성 소수자나 비혼 남녀뿐만 아니라 장애인·이주민 등 다양한 이들이 전통적 가족 형태에 해당하지 않는 `생활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사례가 느는 게 현실이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의 여론조사에서는 법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까지 확장하는 데 찬성하는 이들이 60.1%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혼인·혈연으로 연결된 관계 외에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는 관계'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까지 가족으로 인식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으로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에게 젊은 세대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진 것도 인식 변화를 입증하는 사례다.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일찍이 법적 가족 범위를 넓히는 제도 혁신을 이뤘다.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 부부에게 주는 혜택에 준하는 지원을 해주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이 대표적이다. 이런 노력은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여러모로 가족 정의와 관련한 법과 제도를 혁신적,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은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주거, 의료, 돌봄 등 개인 기본권은 여전히 법적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어지고 있어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가족 관련 법이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생활이나 재산에서 관련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던 가구까지 끌어안을 수 있게 제도 개선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여가부의 이번 기본계획안이 실현되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합의가 필요하다. 논의가 확장되면 동성혼 논쟁과도 관련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상위법 개정이 필요하고 예산 확보 문제도 뒤따른다. 여가부가 26일 온라인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한 생활동반자법이나 동반자등록법을 거론하기도 한다. 어떤 법이나 제도든 졸속으로 추진되면 부작용이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법적 가족 개념의 변화 같은 사안은 더할 나위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