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배복주 부대표의 말마따나 "당원과 국민 여러분에게 매우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 그 자체다. 소수, 약자를 대변하고 민주주의, 인권, 성평등을 앞세우는 정치세력의 역설적 치부가 드러난 꼴이어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더불어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범죄 사건에 이은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범진보의 도덕성에 타격을 추가했다는 시각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비서실장도 지낸 김 대표는 1999년 당시 국민승리21 권영길 대표의 비서로 제도권에 들어와 진보의 정치세력화에 매진한 대표적 진보정치인이다.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 이후 당의 새 리더십으로 주목받아온 이유 중 하나다. 그랬던 김 대표가, 2019년 당직을 맡아 당의 중심부로 진입하며 21대 국회에 갓 입성한 정치인에게 성추행을 저질러 대표직을 내놓는 초유의 사건 장본인이 된 것은 진보 정당으로서는 가공할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지난 22일에는 성폭행 혐의로 전 녹색당 당직자가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용납하기 힘든 성 비위가 잇따르는 데에 개인 일탈을 넘어선 조직과 문화 차원의 구조적 요인은 혹여 없는지 진보 진영은 되돌아볼 일이다.
김 전 대표는 징계가 발표된 뒤 낸 입장문을 통해 사죄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고 저열했던 성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은 본보기 삼아 성범죄 예방교육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진보정당답게 환골탈태해야 한다. 고심 끝에 사건 발생 사흘 후 당에 사건을 알린 장 의원 역시 성명에서 "함께 젠더폭력 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마음 깊이 신뢰하던 대표로부터 저의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충격과 고통은 실로 컸다"고 밝혔다.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제가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라는 말도 그는 덧붙였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여느 유사 사건과 다른 건 가해자의 명명백백한 행위 인정과 피해자의 자발적 신분 노출 및 성범죄 담론 제기, 형사고소 절제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족을 괴롭히는 2차 피해가 더 우려되는 건 그래서다. 당은 배 부대표의 약속대로 피해자 책임론, 가해자 동정론 같은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처리해야 할 리더십이 스스로 문제가 된 형국이니 당의 이후 행보가 불안하다. 그럼에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정의당이 이름값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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