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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착한’이란 단어가 폭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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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착한 임대인, 착한 선결제, 착한 등록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민생 전반이 어렵다. 특히 영업 제한 여파로 자영업자 고충이 하늘을 찌른다. 이를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자영업자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임대료라고 보고 이를 깎아준 ‘착한’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려고 10%만 깎아준다고 치자. 나중에 상황이 호전돼 다시 올리려 해도 원래 가격을 받기 힘들다. 연 5%밖에 임대료를 올릴 수 없는 상가임대차보호법 때문이다. 애초 임차인 보호를 위해 ‘선의’로 만든 법이 결국 ‘착한 임대인’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선의로 만든 정책은 이외에도 적지 않다. 최근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익공유제도 같은 맥락이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시국에 돈을 번 기업이 이참에 상생 차원에서 이익을 나누자는 취지다. 이들 앞에 ‘착한’을 붙여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빚지는 않는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비슷한 선례를 이미 많이 봤다.

이익공유제만 해도 생태계를 조금만 입체적으로 보면 정책 부작용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 소비자, 협력업체, 사회 등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사회 기여 쪽으로 방점을 찍으면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손실을 끼칠 수 있다. 게다가 ‘착한’이 붙은 사회 운동 혹은 정책은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해도 범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이런 운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착한’의 반대말인 ‘착하지 않은’ 이로 찍힐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상이 있으면 근본 원인, 생태계상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4호 (2021.01.27~2021.0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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