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의 의결로 이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의 조사는 모두 끝났다. 앞선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박 전 시장의 사망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과연 진상 규명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결과가 초라했다. 특히 경찰은 5개월여 동안 46명의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참고인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도 어려웠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도 박 전 시장의 사망 전 발언을 공개함으로써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정황을 제시했으나 형사적 판단은 유보했다. 다만 법원이 지난 14일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1심 선고에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처음 인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아니어서 그 의미와 무게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증과 법리에 따라 형사 사건을 엄정히 처리해야 하는 수사 기관들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강제 수사권이 없는 인권위가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자못 고무적이다. 인권위는 피해자 휴대전화에 나온 증거와 이에 대한 참고인들의 진술, 두 사람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인권을 보호·증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한다는 인권위의 설립 취지에 걸맞은 결정으로 평가한다.
박 시장의 사망 이후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놓고 진영 간 싸움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까지 발생하는 등 후폭풍이 이어졌다. 수사기관의 어정쩡한 태도가 주요 원인이지만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이런 모호한 상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바람직하지 못한 시도가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의 사례만 훑어봐도 성폭력과 관련한 문제는 진영과 상관없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인권위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덧내고 박 전 시장의 명예에도 누가 되는 소모적인 공방이 더는 없어야 한다. 이번 사건과 인권위의 결정이 법과 제도, 인식과 문화의 개선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고 성 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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