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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연합시론] 인권위 '박원순 성희롱' 인정…2차 가해·추가논란 더는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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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5일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과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면서 "이와 같은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도 권고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피해자의 법률대리인과 여성단체들이 인권위에 박 전 시장의 성희롱·성추행 의혹과 서울시 관계자들의 방조 의혹, 고소 사실 누설 경위 등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지 6개월 만에, 그리고 인권위가 직권조사단을 꾸린 지 5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면서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증폭한 상황에서 인권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인권위의 의결로 이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의 조사는 모두 끝났다. 앞선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박 전 시장의 사망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과연 진상 규명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결과가 초라했다. 특히 경찰은 5개월여 동안 46명의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참고인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기각으로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도 어려웠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도 박 전 시장의 사망 전 발언을 공개함으로써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정황을 제시했으나 형사적 판단은 유보했다. 다만 법원이 지난 14일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1심 선고에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처음 인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아니어서 그 의미와 무게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증과 법리에 따라 형사 사건을 엄정히 처리해야 하는 수사 기관들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강제 수사권이 없는 인권위가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자못 고무적이다. 인권위는 피해자 휴대전화에 나온 증거와 이에 대한 참고인들의 진술, 두 사람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인권을 보호·증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한다는 인권위의 설립 취지에 걸맞은 결정으로 평가한다.

박 시장의 사망 이후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놓고 진영 간 싸움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까지 발생하는 등 후폭풍이 이어졌다. 수사기관의 어정쩡한 태도가 주요 원인이지만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이런 모호한 상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바람직하지 못한 시도가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의 사례만 훑어봐도 성폭력과 관련한 문제는 진영과 상관없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인권위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덧내고 박 전 시장의 명예에도 누가 되는 소모적인 공방이 더는 없어야 한다. 이번 사건과 인권위의 결정이 법과 제도, 인식과 문화의 개선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고 성 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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