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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유통업 경쟁상대는 야구장" 이랬던 정용진, 야구단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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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4일 온라인 영상으로 2021년 신세계그룹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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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를 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올해 신년사다. 정 부회장은 당시 “고객의 변화된 요구에 맞춰 광적인 집중을 해달라”며 “자신이 속한 사업만 바라보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자”고 강조했다.



SK와이번스 '깜짝' 인수 왜?



정 부회장이 연초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라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신세계그룹은 26일 "SK텔레콤의 SK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세계 이마트가 SK텔레콤이 보유한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한다는 내용이다. 인수 가격은 SK와이번스 주식 100만주(1000억원)와 야구연습장의 토지·건물(352억8000만원) 등 총 1352억8000만원. 신세계는 또 "야구단 연고지는 인천으로 유지하며 코치진·선수단·프런트 전원의 고용을 승계한다"고 했다. 다음 달 23일 본계약을 하고 구단 이름과 엠블럼, 캐릭터 등을 확정해 3월 중 공식 출범시킬 계획이다.

신세계는 이날 SK와이번스 인수에 대해 “온·오프라인 통합과 온라인 시장 확장을 위해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타진해왔다”며 “특히 기존 고객과 야구팬들의 교차점이나 공유 경험이 커 시너지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를 맞아 두꺼운 야구팬층이 온라인 시장의 주도적 고객층과 일치한다는 점도 주목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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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하고 26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3월에 새 구단이 정식 출범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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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잡아라"



정 부회장의 야구단 인수가 처음 공개된 후 유통가는 물론 프로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왜 이 시점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해 유통시장의 소비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만큼 정 부회장이 SSG(쓱)닷컴을 필두로 e커머스(전자상거래) 투자에 집중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온라인 강화 전략을 오프라인(야구단)에서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프로야구 관중 주축은 20~30대이고, 최근엔 여성 관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신세계로선 쿠팡, 카카오 등 e커머스 업체에 뺏긴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세대)를 미래 충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들이 향후 소비를 주도할 세대란 점에서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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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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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회장이 MZ세대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지난해 연말부터 이마트 유튜브에 출연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요즘 젊은 고객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이마트 영업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부터 출연하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의 출연 이후 이마트 유튜브 구독자는 2만여 명이 늘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잡아라"



신세계 내부에서는 프로야구단 인수는 정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야구장은 정 부회장이 유통업의 경쟁 상대로 수차례 거론한 곳이다. 그는 2016년 ‘스타필드 하남’ 개장식에서 “향후 유통업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세계의 한 임원은 “주말에 잠재적 고객을 흡인하는 야구장 등도 우리의 경쟁자라는 의미”라며 “실제 봄만 되면 스타필드 고객 수가 확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업은 단순히 상품 판매가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라고 말했다. 쇼핑, 여가, 외식, 문화생활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유통업이 ‘라이프스타일센터’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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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9일 202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중립경기가 열리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찾은 야구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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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계 안팎에서는 1~2년 전부터 정 부회장이 프로 야구단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신세계의 다른 임원은 “올해 코로나19 종식에 맞춰 고객의 소비 욕구가 온라인 시장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오기 시작할 것”며 “정 부회장은 수 년 전부터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 기업을 말해왔고, 그게 현재 신세계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선 신세계가 야구장에 계열사 매장을 입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는 이날 “야구장을 찾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해 ‘보는 야구’에서 ‘즐기는 야구’가 되도록 하겠다”며“야구장 밖에서도 ‘신세계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마트는 이전에도 SK와이번스 홈구장에 ‘이마트 바비큐 존’ 등을 만들어 스포츠 마케팅을 선보였는데 앞으론 신세계그룹의 서비스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게 서비스를 보다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벌 롯데와 야구판에서 또 경쟁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로 롯데와 라이벌 구도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신세계, 롯데의 맞대결이 유통에 이어 야구판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보유하고 있다. 양 사 구단의 대결은 대중 관심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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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 경기. 6회 말 무사 1, 2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안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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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세계의 SK와이번스 인수는 스마트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작년 쿠팡으로 대변되는 e커머스가 급성장했다. 신세계로선 온라인 쇼핑몰에선 누릴 수 없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찾아내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세계는 이마트 매장에서 와이번스 선수의 사인볼을 파는 등 시너지 효과에 집중할 것”이라며 “롯데도 자이언츠와 연계를 늘리며 스포츠 마케팅 경쟁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세계에 프로 야구단을 넘긴 SK 입장에서는 그룹 내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몇 년 전부터 비주력 사업은 매각하고 있다”며 “특히 SK와이번스에 대해선 돈 먹는 하마라는 SK텔레콤 내부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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