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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조연경의행복줍기] 전원일기 복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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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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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래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재방송하는 건 고마운 배려다. 특히 ‘전원일기’는 농촌생활의 애환뿐만 아니라 한울타리에서 사는 화목한 대가족의 모습과 동네 청년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줘 시린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 드라마다. 어느 날 동네 부녀회에서 단체로 단풍놀이를 갔다. 사방에 고운 물이 들어 있는 단풍은 아름다웠고 모처럼 나들이는 즐거웠다. 복길이는 그곳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한 소년을 만난다. 언제나 혼자인 외로운 소년은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복길이 누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는 딸 옆에 혹같이 붙어 있는 소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빨리 저 산 위로 단풍구경을 가자고 재촉한다.

“단풍은 내년에도 볼 수 있어요.”

복길이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된 소년과 함께 있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년과 헤어질 때 복길이는 소년이 갖고 싶어 하는 조각칼을 선물로 준다. 며칠 후 소년과 소년을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러 복길이 집을 찾아온다. 소년은 조각칼로 주위에 흩어진 나무토막으로 이것저것 만들었고 마침 그것을 본 조각가가 소년의 재능을 발견하고 제자로 삼은 것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소년은 평생 할 일을 찾은 것이다. 한 사람의 작은 관심이 그렇게 큰일을 해낸 것이다.

요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관심’이 아닌가 한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그 출발은 ‘관심’이다. 특히 혼자 힘으로 의사 표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추운 겨울에 왜 맨발일까?’ ‘왜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며 저리 오래 서성일까?’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이제는 다가가야 한다. 그냥 지나치거나 망설이는 게 죄짓는 일이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힘없는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안에서 한 노인이 마주 앉은 아주머니의 장바구니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다. 장바구니 밖으로 비쭉 나온 분홍빛 소시지는 요즘 어린 손자의 최애 밥반찬이다. 노인이 내리자 아주머니는 따라 내렸다. 그리고 소시지와 돈 삼만원을 건넸다. 노인에게서 지독한 허기를 발견한 건 두말할 것 없이 관심을 갖고 바라본 덕분이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 먼저 다가가는 일 그리고 손을 내밀어 주는 일. 무엇보다 시급하게 당장 우리가 해야 될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무관심으로 누군가를 잃거나 불행에 빠트려서 안타까운 후회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관심’, 올 한 해 우리가 지갑에 꼭 넣고 다녀야 할 ‘나는 사람이다’라는 또 다른 신분증이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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