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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동아시아의 코로나 성공적 대처… 그 뿌리엔 ‘벼농사 체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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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세대’로 주목받은 이철승 교수 신간 ‘쌀 재난 국가’

“동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비교적 잘 대처해나가고 있는 것을, 체제가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문제로 봐선 안 됩니다. 그것은 ‘벼농사 체제’가 낳은 협업 구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이철승 교수는“동아시아의 불평등과 위계 구조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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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새 연구서 ‘쌀 재난 국가-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문학과지성사) 출간 간담회에 나온 이철승(50)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말했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마스크를 쓰고 자가 격리의 원칙을 지키는 행위의 동기는 사회적 조율 시스템을 지키지 않아 비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며 “그것은 적어도 수백 년 동안 마을 단위로 경영해온 공동 노동 시스템, 곧 벼농사 체제로부터 야기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2019년 낸 책 ‘불평등의 세대’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한 586세대’를 정조준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책에선 한국과 동아시아 불평등의 ‘기원’에 초점을 맞춰 ‘쌀’ ‘재난’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태풍, 장마, 가뭄 같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먹거리를 유지하는 국가의 활동이, 불평등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의 맨 앞에 놓인다고 봤습니다.”

동아시아의 벼농사 체제는 재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구휼 국가’를 만들어냈다. 또한 공동 생산을 위해 긴밀하고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협업 조직’을 낳았다. 마을 공동체 조직이 가족 세대 간 기술 이전과 또래 세대 내 기술 공유를 통해 고도의 표준화된 농업기술 공동체를 유지했다는 것이 세 번째 긍정적 유산이다. “여기서 생겨난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수직·수평적 기술 튜닝(조율)은 훗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 조직에 이식돼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근간이 됐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유산의 그림자 또한 짙었다. 벼농사 체제 속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는 근로 기간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을 낳았다. 출산과 가정 경영으로 역할이 제한된 여성은 의사 결정에서 배제됐다. 땅과 자산이 씨족 계보로 상속되는 현상은 자산 축적 경쟁을 심화시켰다. 벼농사 체제와 별도로 등장한 ‘시험을 통한 선발과 신분 유지’ 현상이 여기에 맞물려 직무의 숙련도나 현장 기술은 무시됐다. 이 부정적 유산들 역시 21세기까지 계승돼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커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가 정착시킨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는 여전히 많은 곳에 남아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여성 배제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공제를 대체할 직무 평가가 더 확대되고, 임금의 유연화를 통해 일자리 기회를 골고루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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