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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고]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의 걸림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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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왔다. 시장의 '큰손' 국민연금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9개월 동안 참석한 주주총회만 총 794회,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은 3279건에 이른다. 국민연금이 찬성했다느니, 반대했다느니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행사한 의결권 내용을 보면 안건에 찬성한 비율이 83.8%다. 대부분 경영진의 판단을 지지했고, 반대를 행사한 경우는 15.9%에 불과했다. 반대한 건을 보면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이 가장 많고, 그 이유도 장기 연임, 이해 상충 우려, 이사회 참석률 저조, 과도한 겸임 등으로 투자자라면 누구나 한마디 했을 법한 경우다. 시장의 감시자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했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겠다.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에 대한 경영 참여를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도 주주 제안 등 경영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미치는 주주 활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중점 관리 사안인 경영진의 횡령, 배임, 법령 위반 등에 대해 국민연금이 주주 활동 시에도 개시 시점부터 단계별로 1년씩, 최소 3년 이상을 기업과 함께 개선 노력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기업의 개선 의지가 부족하다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주주 제안 등 경영 참여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상장회사가 300개를 넘지만 경영 참여 목적으로 공시한 회사가 없다는 점도 국민연금의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이러한 국민연금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산을 관리하는 집사로서 투자기업과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같이 길을 걷다 보면 때때로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경영권을 갖지 않는 순수한 투자자여서 경영권 유지에 관심이 있는 지배주주의 이해와 다를 때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도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반대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간소하게 반대 표명만 공개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투자기업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세계적 기금인 국민연금의 분석 능력은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하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도 법령에서 보장된 외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집단이며, 상근위원을 중심으로 공식·비공식적 논의를 거쳐 안건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새로운 투자환경은 기업에 ESG 관점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생존 화두로 던져줬다. 따라서 장기투자자로서의 국민연금과 투자기업의 관심은 갈수록 일치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민연금 행보에 대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오해와 의구심이 생길 수 있지만 국민연금의 최우선 사명은 우리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잘 운용해서 돌려드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국민연금은 호랑이의 눈빛을 간직한 채 소걸음으로 착실하고 끈기 있게 나아가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걸어 나갈 것이다.

[오용석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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