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권대섭 부산서 개인전
진짜 달처럼 살짝 기운 조형미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 [사진 조현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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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권대섭(69)이 부산 달맞이고개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높이 55㎝가량의 대형 달항아리 신작 11점(1점은 해운대점)을 공개했다. 백자 항아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갤러리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시장의 유리 통창을 한지 가벽으로 막아 빛을 차단했다. 또 한지를 활용한 조명을 낮게 설치해 항아리 위로 떨어지는 빛을 조절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권대섭의 달항아리는 일반 컬렉터뿐만 아니라 화랑 대표 등 미술계 종사자들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아이템으로 유명하다. 윤형근(1928~2007) 화백의 회화와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란 평가도 나온다. 현대적인 작품과 탁월한 조화를 보이는 매력 덕분이다.
미술계 인플루언서로 떠오른 방탄소년단 RM(김남준)도 권대섭의 달항아리 컬렉터 대열에 들어있다. RM은 지난해 경기도 광주 권대섭의 작업실을 찾았고, 달항아리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을 SNS에 공개한 바 있다.
서울 박여숙 화랑은 2019년 강남 청담동을 떠나 용산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 공간의 첫 작가로 권대섭을 택했다. 지난해 9~10월에도 권대섭의 사발전을 열었다. 서울 PKM갤러리에서 지난달 30일 막내린 ‘타임 인 스페이스:더 라이프스타일’ 전에도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출품됐다. 동서양 미술품과 디자인가구를 함께 선보인 전시에서 달항아리는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아래에서도 존재감을 빛냈다. 현재 서울 성수동 갤러리구조에서 열리는 전시 ‘맥:脈 (혼과 물질 그리고 소리)’도 석철주 작가 작품과 함께 권대섭의 달항아리를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권대섭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조선백자의 전통성을 잇고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하며 도예를 순수미술의 경지로 올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조현 대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미묘한 차이”를 그 비결로 꼽는다. 컬러와 조형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미감을 드러낸다는 것. 언뜻 보면 달항아리가 다 비슷해 보이지만, 굽의 높이와 어깨와 허리의 곡선 등 그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그의 달항아리는 흰색이 아니라 우윳빛에 가깝고 실제 달처럼 살짝 기운 것도 그만의 ‘손맛’으로 추앙받는다.
베스 매킬롭(Beth McKillop) 영국 빅토리아앤알버트 전 부관장은 2018년에 쓴 글에서 “한국 경기도 광주에 자리잡은 권대섭의 가마와 작업장은 현존하는 도예의 중심지”라고 격찬했다. 매킬롭은 “순백의 달항아리는 그 개성과 풍성한 매력으로 현대적 공간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며 “(달항아리의) 옅은 색조는 그것을 보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 보인다”고 했다.
1952년생인 권대섭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대학 시절부터 고미술을 즐겨 봐온 그는 20대 후반 우연히 인사동에서 백자를 본 뒤 도예의 길을 택했다. 1979년부터 5년간 일본 규슈 나베시마요(窯)에서 도자를 배웠고, 1995년 덕원미술관에서 첫 국내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2018년 영국 런던 경매에서 추정가 3배에 가까운 5만2500파운드(약 77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리움 삼성미술관, 기메 미술관(프랑스), 시카고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미국) 등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조 대표는 “권 작가가 한 해 빚는 달항아리는 몇 점 안 된다. 더구나 55㎝ 높이 대형 항아리는 더 만들기 어려워 3년 전부터 작가에게 의뢰하고 완성될 때마다 한두 점씩 모으며 기다렸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부산=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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