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발언 문건 따져보니
1일 오후(현지시각)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장 페이스북에 올라온 아웅산 수치의 발언이 담긴 문건.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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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쿠데타를 받아들이지 말고 모두가 저항하기를 호소한다.”
지난 1일(현지시각) 군부에 의해 구금된 미얀마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국민들에게 했다는 당부의 발언을 놓고 진위 의혹이 일고 있다. 일부 미얀마 인들이 이 발언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미얀마에 사는 한 교민이 국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수치가 했다는 발언이) 제가 알기로는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고 말해 확산됐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볼 때, 해당 발언은 수치가 한 말이 맞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비시>(BBC) 등 미얀마에 주재하는 국외 언론들도 수치의 발언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진위 확인 전에 우선 이 발언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살펴보자. 이 발언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 1일 오후 수치가 이끄는 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장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수치는 이 당의 의장을 맡고 있다. 곧 수치의 공식 계정을 통해, 미얀마 글자로 쓴 문서 사진 한장이 올라왔고, 여기에 “쿠데타에 저항하라”는 수치의 발언이 담겼다.
의심이 이는 대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문서의 글이 수치의 자필로 쓰이지 않았고, 수치의 서명도 없다. 둘째, 발언 시점이 쿠데타 발생 전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글 내용이 평소 수치가 얘기하는 바와 다소 다르다.
우선 첫째 지적은 반증하기 어렵다. 이 문서는 실제 수치가 직접 쓰지 않았고, 수치의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글의 서두에는 전반적인 최근 상황이 담겼고, 후반부에 수치가 했다는 다섯 문장이 등장한다. “쿠데타에 저항하라”는 표현은 이 다섯 문장 가운데 하나다. 수치가 직접 쓰지 않았으니, 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문서의 공신력은 무엇으로 보증될까. 이런 논란을 우려해서인지, 문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는 “이 글은 수치가 직접 한 발언이라는 것을 목숨 바쳐 맹세한다. 윈 테인”이라는 손글씨가 덧붙었다. 파랑 펜으로 두 줄에 걸쳐 윈 테인이 직접 쓴 문장이다. 윈 테인은 수치의 동료로 민주주의민족동맹의 고위 간부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이 당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가 직접 수치의 발언을 들어 당 공식 누리집에 올린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얀마 인권활동가 소모뚜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우선 윈 테인이 직접 쓴 글이 증거다. 그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의 원로다”라며 “우리도 따로 미얀마 현지 유력 인사에게 확인했다. 수치의 발언은 그가 직접 한 발언이 맞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10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아웅산 수치의 사진을 들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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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지적은 반박하기 어렵지 않다. 수치의 발언은 실제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압승을 거둔 뒤,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달 말부터는 공공연하게 쿠데타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26일 군 대변인이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도 역시 말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쿠데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수치가 미리 당 동료에게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건에 26일 군 대변인의 쿠데타 암시 발언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지난달 27~30일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지적은 “저항하라”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페이스북의 해당 문건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수치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글을 쓴다”, “군부가 올린 것일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적지 않다. 1988년부터 민주화 운동을 시작해 30여 년 동안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이끈 수치가 국민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듯한 발언을 할 리 없다는 믿음이 깔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부가 쿠데타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유도하기 위해 쓴 가짜 글일 수 있다는 의심이다.
이에 대해 미얀마 인권활동가 소모뚜는 “수치의 ‘저항하라’는 말은 길거리에 나와 폭력적으로 저항하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미얀마인들은 수십 년 동안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군부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안다. 지금 군부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시끄러워지기를 바랄 텐데,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 소통과 파업 등을 통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아래는 위 문건을 해석한 글
국민들에게 당부 드립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1월26일 조 민 툰 준장(군 대변인)은 ‘군이 쿠데타를 안하겠다고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발언은 군이 만든 2008년 기초 헌법을 무효화하고 필요시 쿠데타를 일으킬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추측됐습니다. 1989년 아웅산 수치 의장이 이라와디주로 국민들을 만나러 갔을 때, 이라와디주 최고 군인은 수치 의장의 생명을 위협하는 발언과 행동을 했습니다. 당시 수치 의장은 본인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보고, 당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간부들과 유언장을 썼습니다. 이 유언장에는 본인이 죽으면, 아웅산 장군의 기념관이 될 본인 집에 보관해달라고 쓰여 있습니다. 현재 군부가 쿠데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고, 양곤을 포함해 여러 도시에 군인들이 등장해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수치 고문은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면서, 동료들과 상의해 아래 5가지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1. NLD당은 군이 만든 2008년 헌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국회에 들어가 정치활동을 할 때 그 헌법대로 따랐다.
2. 헌법을 고치기 위해 법 테두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3. 1990년 선거, 2012년 보궐 선거, 2015, 2020년 총선 때는 헌법에 정해진대로 따랐고, 그 선거에 압도적으로 이겼다.
4. 이 편지를 국민들이 읽을 때, 군부는 본인들이 만든 헌법을 무시하고 온 국민이 투표해서 합법적으로 선출한 국회와 정부를 해산했을 것이다.
5. 군부의 이런 작태는 현재 당면한 코로나19 사태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군부독재 체제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에 군부의 쿠데타를 국민들은 일정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말고, 모두 저항하기를 호소한다.
국민이 우선이다.
(아래 볼펜으로 쓴 글씨)
위 글은 수치 여사가 직접 말한 것이라는 것을 제 목숨을 바쳐 맹세합니다. 윈 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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