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가결은 역사적이다. 법관 탄핵소추가 헌정사 최초여서다. 전두환 정부 시절이던 1985년 고 유태흥 전 대법원장과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의 탄핵소추는 불발했다. 전자는 부결됐고 후자는 표결 시한이 지나 폐기됐다. 두 선례가 대법관 이상을 소추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대법관 미만 법관에 대한 이번 탄핵소추 시도에는 이미 최초라는 의미가 부여된 바 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래 독재 권력에 휘둘린 그 숱한 사법의 흑역사를 떠올리면 판사의 탄핵소추가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뭣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용되는 삼권분립 민주헌정 체제가 순조롭게 작동한 점은 자못 의미가 크다. 사법부는 그간 사법 독립의 가치를 선택적으로 내세우며 사법권을 오ㆍ남용하면서도 면책만 받았다는 평이 많기에 더욱 그렇다.
임 부장판사의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지게 됐다.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에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하면 탄핵 되고 그렇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임 부장판사가 이달 말 퇴직하므로 그 이후 내려질 공산이 큰 헌재의 판단은 탄핵이 가진 가장 직접적 법률 효력인 공직 파면이라는 실효가 없어서 각하되리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내용의 헌법을 위반했다고 비판받는 법관에 대한 심판인 만큼 본안을 다뤄 헌재의 판단을 기록에 남기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요구된다는 지적을 헌재는 유념해야 한다. 탄핵하느냐, 않느냐와 관계없이 헌법 가치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그것대로 의미 있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소추는 그 자체의 시비 논란과 별개로 너무 지연됐다는 비판이 따른다. 코로나 비상시국 속에 주목도 역시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작년 2월 임 부장판사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직후 당시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이 탄핵 필요성을 말했으나 이렇다 할 후속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앞선 2018년 11월에는 당사자 격인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일부 위헌적 사법농단 행위를 탄핵감이라 짚었지만 역시 선언에 그쳤다. 참여연대 등이 참여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같은 해 10월 법관 6인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며 이후에도 같은 주장을 지속했으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인제 와서 탄핵을 추진하니,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하는 '사법부 길들이기용'이라거나 4월 보궐선거에 대비한 여당의 강성지지층 결집용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적 반대편에서야 할 수 있는 분석이고 의심이며 일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과도하다. 임 부장판사가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법관이 아닌 것이 일단 근거로 꼽힌다. 그래선 안 되겠으나 여당이 사법부를 길들이려 했다면 효과를 더 볼 법한 다른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을 거라는 추정은 또 다른 이유다. 게다가 여당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당 3곳도 탄핵 추진에 동참했다. 헌법 가치를 지키며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다른 모든 판사가 이번 일에 영향받아 권력 눈치를 보며 권력에 종속되리라 보는 건 기우라고 믿는다. 절대 그래서도 안 된다. 시대는 이미 많이 변했다. 외려 사법부의 자정 작용을 더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탄핵 추진이 부당하다는 임 부장판사의 반발은 위험 수위를 넘은 느낌이다. 작년 5월 김명수 대법원장을 면담하며 사의를 표명한 자리에서 했다는 녹취까지 폭로했다. 녹취된 김 대법원장의 발언 요지는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당사자의 사의 수용은 국회의 비판을 피할 수 없으므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탄핵의 현실성과 당위성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탄핵 제도가 있어서 국회에서 탄핵 얘기가 되는 것인데 사표를 수리하면 당사자가 공직에 없게 돼 얘기를 못 하게 된다고 봤다. 이 판단이 타당하냐, 않으냐를 떠나 면담 때 탄핵 얘기를 했다는 임 부장판사의 앞선 폭로를 부인한 대법원장은 거짓말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의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자신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됐을 텐데 거짓을 말한 셈이 돼 문제가 커졌다. '불분명한 기억' 탓이라고 해명했으나 야권에선 사퇴 요구까지 터져 나왔으니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런저런 분란에도 독립된 재판, 즉 사법권의 훼손에 일대 경종이 울린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재판의 의미와 사법 독립의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되새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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