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예규에는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법원 감사부서의 조사가 진행 중일 때, 징계가 청구됐을 때에만 판사의 의원면직을 제한하도록 돼 있다. 국회의 탄핵은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라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낼 의무가 있는 대법원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또 녹취록이 공개된 뒤 거짓말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김 대법원장은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중대한 사안에 대해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침묵했어야 했다. 사법부의 권위와 대법원장의 품격에 먹칠을 한 처신이다. 사법부의 수장이자 본인의 상사와 면담하면서 동의 없이 녹음을 하고 외부에 공개한 임 부장판사의 행동도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이번 사태는 여권에서 무리하게 법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면서 비롯됐다. 범여권은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의 판결문에 헌법 위반이 언급됐다는 것을 탄핵의 주요 근거로 들고 있지만, 임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권이 탄핵 제도를 ‘사법의 정치화’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관에 대한 탄핵은 중차대한 헌법·법률 위반 사안에 대해 극히 제한적으로 하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부합한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이달 말까지 임기를 채우도록 해 국회가 탄핵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한 것도 부적절하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흔들리면 법치주의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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