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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정권교체와 공무원 잔혹사… '교과서 무단수정' 과장, 선긋기 나선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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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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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국정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직원들이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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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공무원 잔혹사'가 교육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방침에 따라 무리하게 국정 교과서 내용을 수정한 교육부 공무원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3일 대전지법이 공개한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교육부는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 실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문구를 놓고 정권에 따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교육부 오락가락 방침에 저자 "교육부가 다 책임져라"

당초 집필자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는 데 반대했다.

사건을 폭로한 박용조 전주교대 교수는 2015년 사회 교과서 집필 준비 당시 "2009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맞게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기재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에 따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재해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실제로 2016년 배포된 사회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재됐다.

집필자 측은 2016년 1월 담당자에게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꾼 책임은 전적으로 교육부가 져라"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2017년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자 이제는 교육부가 정반대의 요구를 했다.

당시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이었던 A씨는 함께 일하던 교육연구사 B씨를 통해 박 교수에게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박 교수는 이를 거절했고 향후 수정 작업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A 과장 "대한민국 수립, 문제 없다" 자료 배포한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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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17년 3월에 배포한 해명자료 내용.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이 문제없다는 취지를 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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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전후로 같은 직무를 맡았던 A 전 과장의 행보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A 전 과장은 전 정부 하인 2017년 3월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6개월만에, 새 행정부 출범으로부터는 약 4개월 만에 느닷없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후 A 전 과장은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 A 전 과장은 2017년 9월 B 전 연구사에게 "원래 교육과정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야 한다는 민원이 있으면 교과서 수정이 수월하다"고 말했고, B씨는 친한 교사를 통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과서 발행사였던 지학사 직원 C씨는 박 교수가 스스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한 것처럼 자료를 만들었다. 또 박 교수를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고 문서를 꾸미고 박 교수의 도장을 임의 날인했다.

심지어 B 전 연구사는 교과서 발행사가 수정보완협의록 등을 보내던 날 "박 교수에게 보내지 말라"고도 말했다. 처음부터 교육부가 박 교수를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교육부 내부적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수정 방향은 옳지만… 교육부는 선긋기·꼬리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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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일 오후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 앞에서 민주노총 경북본부와 전교조 경북지부 등으로 구성된 경북교육연대 회원들이 '문명고 한국사 국정교과서 시범학교 반대 교사 징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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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임시정부 설립에 대해 확연히 다른 시각을 내포한다.

대한민국 수립은 나라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개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1919년 임시정부가 설립되면서 나라가 만들어졌으므로 1948년에는 정식 정부가 출범한 것 뿐이라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필진들이 임명돼 논란을 빚었다.

당시 교육부가 견본으로 제공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에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이 방침은 철회됐다.

역사학계는 교육부의 수정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보고있다.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이 정권 입맛에 따라 휘둘리고 무리하게 행정작업을 추진한 점은 부처 내부적으로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교육부는 A 전 과장과 선 긋기에 나선 모양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수정 권한이나 절차가 미비할 때 벌어진 일이다"라며 "형사 판결에 대한 항소 등은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윗선 개입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은 교육부 과장급 직원 이하로 기소 범위를 좁혔지만 재판부는 윗선 개입에 대한 여지를 열어뒀다. 재판부는 양형이유를 설명하며 "피고인들은 교육부의 중간 관리자 내지 실무자로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는 아닌 점은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한다"고 했다.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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