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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청와대 경고 뒤, 윤석열 더 독해졌다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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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부패완판’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여당발(發) 수사권 개편안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담아낸 여덟 글자다. 윤 총장은 이날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진행 중인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으로,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총장은 검찰에 남긴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넘기는 걸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수사권 개편이 예고된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 1일 언론 인터뷰로 침묵을 깼다. “직(職)을 걸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 “법치 말살, 민주주의 퇴보”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반발하면서다. 지난 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선 “검수완박은 정경유착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역사의 후퇴”라고 치받았다. 이날은 “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될 것”이라며 수위를 높였다.



靑 경고에도 “檢이 법무공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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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가운데 도착 직후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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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은 지난 2일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지난 2일)이라는 청와대의 경고와 “언제든 열려 있고 (윤 총장을) 만날 생각이 있다”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회유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경제·사회 제반 분야에 있어서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다. 부정부패 대응이라고 하는 것은 적법 절차, 방어권 보장, 공판중심주의란 원칙에 따라 법치국가적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의 준비 과정인 수사와 법정 재판 활동이 유기적으로 일체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수사·기소 분리 불가론을 재차 강조했다.

윤 총장은 이날 대구고검·지검 검사·수사관 등 30명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해 상대적 약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게 검찰개혁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권 박탈 입법에 대해서도 “수사지휘나 수사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만 하는 건 검찰을 국가법무공단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총장은 또 박범계 장관이 이날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좋은데 이렇게 언론과 대화하니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올바른 설명을 드리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도 “지능범죄가 창궐하고 국가의 근간을 흔들 때 집이 불탄 것을 알게 될 텐데 걱정이다” “중대범죄 대응 약화를 초래해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 “갑자기 이런 법안이 추진되는 속뜻이 궁금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등의 견해를 쏟아냈다고 한다. 토론이 이어지면서 2시간으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1시간가량 늦은 이날 오후 7시쯤 마무리됐다.



尹 “인사권자 눈치 안 보는 게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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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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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취재진의 카메라에 둘러싸인 윤 총장의 어투는 준비한 원고를 읽듯 막힘이 없고 단호했다. 다만, 윤 총장은 ‘여권이 중수청 설치를 강행하면 임기 전에 사퇴하느냐’는 질문엔 “지금은 그런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고 즉답을 피했다.

윤 총장의 이날 대구 방문은 지난해 2월 부산·광주, 지난해 10월 대전에 이은 마지막 지방 순회 일정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징계 시도 등으로 중단했다가 법원의 제동으로 직무에 복귀한 뒤 첫 외부 행보이기도 하다. 대구는 윤 총장에게도 각별한 곳이다. 1994년 초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2009년엔 대구지검 특수부장으로 일했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팀장을 지낸 뒤엔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돼 2년여를 근무했다. 윤 총장은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고장이다. 떠나고 5년 만에 왔더니 정말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치 의향 묻자 “이 자리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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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가운데 대구지검 앞은 윤 총장 지지자와 반대 시민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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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직까지 거는 배수진을 치며 여권에 맞선 윤 총장이지만, 그를 맞이한 ‘보수의 심장’ 대구의 시민들은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대구지검 앞에 운집한 100여 명의 시민 대다수는 윤 총장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영했지만, 일부는 “박근혜(전 대통령) 구속한 윤석열은 사퇴하라”며 항의하다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정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與 "검수완박 철회는 없다"



이날 윤 총장의 발언을 전해 들은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책임 있는 공직자인데도 하고 싶은 말을 격한 표현으로 다 하시니 굳이 민주주의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검수완박의 철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중수청설치법에 대한 일선 검찰 구성원 의견을 이날까지 취합해 국회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한 검찰 간부는 “중수청에 대해 일선 검사 대다수가 우려와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구=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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