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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불가피한 선택”…“무책임한 정치 행보”, ‘검찰·정권 갈등’ 불지피며 떠난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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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 중도 사퇴 평가

[경향신문]

역대 22명 중 14명 임기 못 채워
대부분 수사 갈등으로 물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 14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윤 총장이 정계 진출 가능성을 내비치며 전격 사퇴한 것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선택’ ‘무책임한 정치적 행보’ 등 평가가 엇갈렸다.

■총장 3명 중 2명이 임기 못 채워

검찰청법에 규정된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31일부터 시행됐다. 정치권력의 외압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법 개정 당시 재직하던 22대 김기춘 총장부터 43대 윤 총장에 이르기까지 22명 가운데 임기를 채운 경우는 8명에 불과했다. ‘이용호 게이트’에 동생이 연루된 신승남 총장(2001년 5월~2002년 1월 재직)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리보다는 수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물러났다.

김종빈 총장(2005년 4~10월)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수용한 뒤 항의 표시로 사퇴했다. 임채진 총장(2007년 11월~2009년 6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채동욱 총장(2013년 9월~2014년 4월)은 표면적으로는 ‘혼외자 의혹’으로 사임했지만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로 미운털이 박혀 사실상 경질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상대 총장(2011년 8월~2012년 12월)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다 검사들의 반발로 물러났다. 정권 입맛대로 독단적으로 검찰조직을 운영했다는 것도 검사들의 반발 원인으로 거론된다. 1차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물러난 김준규 총장(2009년 8월~2011년 7월)이 윤 총장 사례와 가장 비슷하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뒤 물러났다. 윤 총장은 여권과의 갈등을 수습하기보다는 불을 지피는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물러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민주화 이후 검찰총장 3명 중 2명꼴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현실은 ‘정치’와 ‘법치’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어느 정권이든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통제하려 했다. 현 정권은 의회에서의 협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대신 수사와 재판을 활용한 ‘인적청산’에 매진했다”며 “한편 윤 총장은 국회에서 논의 중 사안에 ‘헌법질서가 파괴되고 있다’는 말로 정치 전반을 부정하며 갈등을 수습 불가능하게 키웠다”고 말했다.

■사퇴에 엇갈린 평가

윤 총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다른 검찰총장들은 (검찰의 수사로 인한) 사건·사고와 정치적 격랑 속에서 흔들린 것인데, 윤 총장은 검찰이란 조직의 의미에 대한 입장차로 사의를 던졌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검찰의 역할을 둘러싼 시대적 요구를 정리하고 직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직을 던진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총장직에 있으면서 검찰 내부 의견을 모으고, 국회의 논의 절차에 따라 질서 있게 논쟁을 정리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검찰이란 조직을 정치의 한가운데 집어 던져놓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말’은 결국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라며 “윤 총장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잘잘못을 가릴 대상은 아니다. 다만 현재 정치적 상황이 윤 총장을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한 부장검사는 “윤 총장이 검찰 조직 내에서 여권과 싸울 방법이 없었다”며 “법무부가 검찰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준 적이 있었느냐. 검찰 의견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사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사 출신으로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윤 총장의 사표는 무책임하고 정치적 행보”라며 “일선 검찰청의 의견을 잘 듣고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현직 총장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오늘 사직할 생각인데 어제 대구를 방문한 것은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을 욕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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