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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퇴임사 대신 출사표 쓴 윤석열…"헌법 마지막 책무"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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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임명된 지 588일 만이자, 7월 24일 임기 만료를 142일 앞두고서다. 검찰총장의 2년 임기가 보장된 1988년 이후 역대 총장(22명)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14번째 총장이 됐다.



尹 "민주주의·법치 지키는 마지막 책무 이행"…대선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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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들어가기 전 사의를 표명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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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앞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초유의 총장 징계 시도에도 버텼던 윤 총장이 사표를 내게 한 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을 통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추진이었다.

윤 총장은 지난 1, 2일 중앙일보 등과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법치 말살, 민주주의 퇴보”“역사의 후퇴”라며 공개 비판했다. 지난 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선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게 국민의 검찰”이라며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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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오후 집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대검찰청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꽃다발을 들고 나서고 있다. 그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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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표명 뒤 ‘검찰 가족께 드리는 글’에도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수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2019년 7월 취임한 윤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및 입시비리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함께 현 여권과는 급격히 멀어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재임기엔 검찰 인사 협의에선 배제되고, 주요 사건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다. 지난해 11월엔 검찰총장으론 처음으로 직무정지·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법원의 집행정지에 따라 직무에 복귀한 뒤엔 여권의 사퇴 압박에도 “법이 정한 2년 임기를 마칠 것”이라며 버텼다.

그러나 관계 회복을 기대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참모진을 교체해달라는 자신의 의견을 ‘패싱’한 데 이어 지난달 9일 중수청법을 황운하·최강욱·김용민 의원 등 친문 강경파 의원들이 발의하면서 거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철수·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된 날 사퇴…"선거로 중수청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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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4일 전격 사의를 밝혔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는 모습. 이로부터 한달여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하면서 현 여권과는 척을 지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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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미 2~3주 전부터 주변에 "180석 절대다수 여당이 나를 내쫓으려고 검찰을 해체하겠다고까지 나선 상황에서 자리에 연연하는 건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사퇴를 결단한 시점이다. 4일 전격 사퇴 결정에 4·7 재·보궐 선거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총장으로선 보궐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여당 ‘중수청법’ 추진에 대한 대국민 심판론을 조성해 이를 막을 수 있는 적기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 주변에서도 “여권이 절대다수이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곧바로 대선과 직결되기 때문에 친문 세력 내부에서도 중수청법안 무리한 추진에 역풍이 불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4일은 야권 제3지대 단일 후보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확정되고, 국민의힘이 오세훈 전 시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한 날이다. 이에 윤 총장의 전격 사퇴가 보궐선거를 통해 여권의 중수청 추진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대선 출사표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그는 이날 사직의 변(變) 곳곳에서 그런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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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일 오후 대구고검·지검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검찰청사를 떠나기 전 직원들을 향해 "대구검찰 파이팅"이라고 격려하며 손뼉을 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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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검찰 직원들에 남긴 퇴임사에서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이행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윤 총장 본인은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함구했지만, 주변에선 “정치참여를 선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 이유다.

한 검찰 간부는 “앞으로도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변호사를 하면서 그럴 수 있겠나. 총장직을 내려놓고 하겠다는 건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제껏 총장직을 수행하는 1년 6개월 간 국민 보호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이미 많은 사람이 따르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국가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판·검사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적어도 1년 전(3월 9일)에 사퇴해야 한다는 검찰청법 개정안,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발의한 걸 피했단 지적도 나온다. 특정 개인의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는 과잉입법이자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어긴 위헌법률이란 지적에도 국회 174석 절대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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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취임부터 사의 표명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이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지 1시간 15분만인 이날 오후 3시 15분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사의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윤 총장은 이날 오후 4시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과 면담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 뒤 이날 오후 6시쯤 퇴근했다. 정식 사표 수리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5일 하루 휴가를 냈고 신변을 정리한 뒤 27년 검사 생활을 마칠 예정이다. 그는 이날 퇴근길을 배웅하러 나온 대검 직원들에게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먼저 나가서 아쉽고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다. 부득이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인사로 퇴임식을 대신했다. 대검 직원 외에도 김후곤(서울북부지검장)·노정연(서울서부지검장)·이주형(의정부지검장) 검사장 등이 그의 마지막 퇴근길을 지켰다.

하준호·정유진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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