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0 (목)

대구서 시작해 대구서 끝냈다…27년 검사 윤석열의 수구초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며 잠시 눈을 감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61ㆍ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의 4일 사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곧바로 수용하면서 윤 총장의 27년 검사 생활의 마지막 일정은 전날 대구고검ㆍ지검 방문이 됐다.


윤 총장은 이날 집권 여당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중대범죄수사청' 도입에 반발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전날 윤 총장이 방문한 대구는 공교롭게도 그가 ‘신림동 고시 낭인’에서 사법시험 9수 끝에 1994년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 초임지였다. 윤 총장은 94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부장검사로 있던 대구지검 형사1부로 배치받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윤 총장 스스로 3일 “대구는 제가 27년 전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임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윤 총장 입장에선 27년 검사 생활을 대구에서 시작해 대구로 끝맺은 게 됐다.

중앙일보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부터 사의 표명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서울 태생인 윤 총장에게 대구는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을 맡아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을 빚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조 검사장의 수사 외압 사실을 공개 거론하며 정권 수뇌부와 충돌했다. 그런 뒤 윤 총장은 2014년 1월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성 발령을 받아 2017년 5월 문 정부 출범 때까지 사실상 3년여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대구에서 2년, 이어 대전고검에서 1년 5개월을 머물렀다.

중앙일보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검찰 수사관이 윤 총장의 대구고검 시절 일화를 직장인들의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 소개한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수사관은 윤 총장에 대해 “좌천됐을 때 저녁에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 먹고 야근하던 모습에 직원들이 그냥 다 '뿅' 가버렸다”며 “당시에 대구고검에서 행사 사진 올린 거 보면 저 멀리 앉아 있고 진짜 불쌍하다. 근데 또 행사는 다 참석해서 사진 봐도 간부들한테 떨어져서 저 뒤에 혼자 서 있다”고 묘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직 발탁된 윤 총장은 국정농단·사법농단 의혹 등 소위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할 때만 해도 '국민검사''촛불검사'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총장 임명 직후인 여권이 반대한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시작으로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의혹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착수한 게 정권과 갈등의 시작이었다. 추미애 전 장관의 지난해 말 헌정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 청구로 갈등은 정점으로 치닫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 검찰 수사권 완전박탈(검수완박)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등 여권의 전방위 압박을 받는 와중에 윤 총장이 과거 '유배지'였던 대구고·지검을 3일 찾은 것은 묘한 데자뷔를 불러일으켰다.

윤 총장은 4일 중수청 저지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사퇴 카드를 던졌지만, 문 대통령이 75분 만에 ‘광속 수용’ 하면서 검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에 3일 대구 방문으로 윤 총장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이자 수미쌍관(首尾雙關)을 보인 셈이 됐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