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차기 대권
민주 “본격 행보 땐 거품 빠질 것”
내부, 정권 견제 결집 예의주시
국민의힘, 고무된 분위기 역력
야권발 정계개편에 기대감 커
“尹, 존재감 유지하며 기다릴 것”
보선이 대권 첫 시험 무대될 듯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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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로 차기 대권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의 조기사퇴가 차기 대선뿐 아니라 대선 전초전 격인 다음 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윤 총장이 ‘반문(반문재인)’뿐 아니라 문재인정권에 대한 중도층의 견제 심리를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내심 윤 총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윤 총장, 중도층 文정부 견제 심리 구심점 될까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윤 총장 사퇴가 재보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리는 우리 길을 가면 된다”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윤 총장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하면 검증 과정에서 지지율 거품이 빠질 것으로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윤 총장과 여권의 대립 구도가 재조명되면서 그를 중심으로 정권 견제 심리가 결집할 수 있다고 보고 여론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이슈를 집중시켜 보궐선거를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려는 ‘야당발 기획 사퇴’를 의심케 한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민주당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추진해온 4차 재난지원금과 가덕도신공항 건설 이슈가 윤 총장 사퇴 파장에 휩쓸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정치외교학)는 “여권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지금 사태를 수습해야 하므로 신현수 민정수석 사의를 수리하고 후임을 즉각 임명한 것”이라며 “윤 총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윤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니 즉시 그렇게 한 것이라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윤 총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정치는 하되 국민의힘에는 못 들어갈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관여했기 때문”이라며 “제3지대에서 메시지를 꾸준히 내면서 자기 존재감을 유지하는 한편 정계개편을 기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은 고무된 분위기다. 핵심 관계자는 “당장 윤 총장의 입당은 어렵겠지만, 그가 야권에 힘을 보태는 제3지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이 재보선 이후 분출될 야권발 정계개편론 속에서 구심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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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궐선거, 윤 총장 차기 대권주자로서 정치적 시험 무대될 듯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총장이 만약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며 그 역시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보궐선거가 그의 첫 정치 무대 데뷔전이자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총장은 그간 현직 총장 신분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함께 ‘대권주자 빅3’로 불리며 여느 야권 대권주자들보다도 높은 지지율을 받아왔다. 특히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절정에 달하던 지난해 말에는 여야 주자를 통틀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을 세우던 추 전 장관의 퇴장과 연초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을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발언한 이후 지지율 하락세가 감지됐다. 윤 총장은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3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9% 지지율을 기록해 이재명 경기도지사(27%)와 민주당 이낙연 대표(12%)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야권 내 눈에 띄는 대권주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윤 총장이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걷게 되면 대권구도 판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은 이념적으로 중도, 지역적으로 영남과 충청을 흡수할 수 있어 여권으로선 위협적 존재다. 그간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지해온 야권 내 반문재인 여론이 이 지사가 아닌 윤 총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위기감을 느낀 친문(친문재인)의 결집도도 높아지면서 민주당 내 대권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책조정회의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손으로 뒷머리를 만지고 있다. 오른쪽은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 서상배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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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與… “尹, 피해자 행세 뒤 사퇴 계산”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사퇴를 공식화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을 ‘정치검사’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현직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어 다음 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온 여권은 윤 총장이 사의를 공개적으로 밝히자 참았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윤 총장 사퇴의 직접 계기가 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법 발의 시점에 대해선 “특정하지 않았다”며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얻은 건 정치검찰의 운명이요, 잃은 건 국민의 검찰이라는 가치”라고 했다. 허 대변인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될 때까지 검찰 스스로 개혁 주체가 돼 중단 없는 개혁을 하겠다던 윤 총장의 취임사는 거짓됐음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정치인 윤석열’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오롯이 윤석열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윤 총장은 이날 정계 진출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당내에선 윤 총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재임 기간 윤 총장과 충돌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그분(윤 총장)의 정치 야망은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며 “이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피해자 모양새를 극대화한 다음에 나가려고 계산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윤 총장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준 것 아니냐는 물음엔 “제가 키웠다면 적어도 제 말은 잘 들어야 하는데 국회에서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고 했다.
한 핵심 의원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판을 흔들고 영향력을 최대화시켜서 정치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해온 게 검찰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정치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 의심받을 것”이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검찰총장이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건 총장 직분을 활용했다는 것이어서 악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도 “윤 총장 입장에선 지금 타이밍이 좋다. 탄압받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이라며 “전날 보수의 본원인 대구를 간 것부터가 정치적 행보다. 굉장히 의도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잠재 대선 후보인 이낙연 대표는 국회에서 윤 총장 사퇴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 “생각을 한 뒤에 말씀드리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후 외부 일정에서는 기자들한테 “검찰개혁은 흔들림 없이 할 것”이라면서도 윤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 등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 총장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중수청법 발의 시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당내 검찰개혁특위 오기형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법안 발의 시점을 묻는 기자들에게 “특정하지 않았고 논의를 계속하겠다”며 “논의 결과물이 나오면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서상배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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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는 野… “文 폭주 브레이크 없어졌다”
국민의힘은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발표에 “문재인정부가 결국 윤 총장을 몰아낸 것”이라며 현 정부에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었다. 또 “문재인정권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브레이크가 없어졌다”며 개탄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정치권에선 사실상 윤 총장의 정계 진출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야권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무너진 것을 확인한 참담한 날이다. 정권 핵심과 그 하수인은 당장 희희낙락할지 몰라도 앞으로 윤 총장이 내려놓은 결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민심이반을 경고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불의하고 무도한 정권이 핍박과 축출 시도로 일국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총장마저 축출하는 데 이르게 됐다”며 “윤 총장과 힘을 합쳐 대한민국 헌법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 총장 사퇴로 이어진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밀어붙이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배 대변인은 “이 정권은 ‘검찰개혁 적임자’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자 인사 폭거로 식물 총장을 만들다 못해 아예 형사사법시스템을 갈아엎고 있다”며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윤 총장의 회한이 짐작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총장 사퇴에 앞서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자연인이 돼서 보자고 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윤 총장 영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그 사람이 실제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지 안 하고 싶어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윤 총장에게 “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처신하라”고 했던 정세균 국무총리를 향해서도 “그거를 일방적으로 몰아치면 정상이 아니다”며 윤 총장 편에 섰다. 김 위원장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윤 총장 부친인 윤기준 연세대 명예교수와 학계에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4·7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야권 정계개편의 핵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윤 총장이 안 대표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국민의당 소속으로 서울시장이 되면 국민의힘과 연대하지 않고 제3지대 구축에 더욱 힘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윤 총장이 안 대표의 제3지대 세력과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그간 윤 총장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해왔다.
안 대표는 윤 총장 사퇴 직후 입장문을 내고 “상식과 정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윤 총장님, 그동안 수고하셨다”며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윤 총장님의 앞날을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장혜진·배민영·곽은산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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