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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주노동자 주거개선은 '미봉책'?…밀양 깻잎밭 찾아간 노동인권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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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가 5일 밀양 부북면에 위치한 한 깻잎 농가를 찾아 이주노동자, 고용자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밀양=강보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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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이주노동자는 동네 머슴 아니다!"

[더팩트ㅣ밀양=강보금 기자]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노동인권버스'가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경남 밀양 곳곳의 노동착취 현장을 돌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에 귀기울였다.

'지구인의정류장'(이주노동자 인권단체)을 비롯한 이주인권단체들은 "경남 밀양 지역 깻잎밭은 농촌 이주노동자가 겪는 문제가 집약돼 있는 곳"이라며 노동인권버스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에 따르면 밀양은 우리나라 최대의 깻잎 생산지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권 침해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9월에는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밀린 임금과 불법 파견근로, 비인간적인 숙소 등의 문제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같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밀양 지역의 노동자들로부터 10여 건의 노동권 침해 상담사례가 접수됐다. 그 침해 사례가 공통적이고 유사한 내용임에 지속적인 악습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해 노동인권버스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밀양 깻잎밭 비닐하우스에 사는 이주노동자들

지난해 정부 조사에 따르면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69.6%가 가설건축물,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에 거주했다.

실제 노동인권버스가 이틀간 방문한 밀양 깻잎밭의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또는 비닐하우스 1m 앞에 설치된 조립식 패널형 숙소에 거주했다.

밀양 부북면에 위치한 깻잎밭을 찾은 김 대표는 농장 고용주에게 "시의 허가도 받지 않은 가설건축물에 노동자들을 살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용주가 "원래 주택 건물에 숙소를 마련했었는데 이곳은 잠시 숙소 공사 기간 머무는 곳"이라고 말했다.

해당 숙소에 거주하고 있는 캄보디아 여성 A씨에게 확인한 결과 A씨는 조립식 패널형 숙소에 4년간 계속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한 켠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사는 컨테이너는 심지어 비닐하우스 모양대로 기울어져 제대로 잠을 자기 힘든 구조였다.

이에 이틀 동안 노동인권버스가 찾아간 현장에서 10여 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직 의사를 밝히고 노동인권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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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직 의사를 밝히고 짐을 챙겨 나와 노동인권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밀양=강보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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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자유 아닌 확대에 '미봉책' 우려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캄보디아 출신 속헹(31)씨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최근 정부가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에 나서기로 했지만 현재도 관리감독이 잘 안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이달 말부터 비닐하우스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받거나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외국인 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지난 2일 발표했다.

현행법상 E9-4 취업비자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처음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나 계약 만료 시 총 4년10개월의 취업기간 동안 5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휴·폐업이나 부당한 처우 등 노동자 책임이 아닌 경우에는 횟수 제한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 요건을 스스로 증명하기 힘든 상황에서 실제로 부당한 고용주 아래 사업장 변경 신청은 이뤄지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에 정부는 이달 말까지 관련 고시를 개정해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을 받지 않는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를 확대할 계획이다.

새로 개정된 고시에는 비닐하우스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받거나 농한기·금어기에 권고 퇴사당한 경우가 포함됐다.

또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3개월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질병이 발생한 경우,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가 이주노동자 전용보험과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직장 동료, 사업주의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어도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긴급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과연 실질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높다.

노동인권버스 관계자는 "악덕 고용주의 노동착취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고 싶어도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주노동자에게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게 되고 고국으로 추방되는 사례가 허다하다"며 "외국인 취업비자를 정부가 일률적인 관리 하에 두고 직접 사업장을 지정해주는 구조가 관리감독이 느슨한 상태에서는 인권침해 문제의 온상이 되기 십상이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개정안이 이동의 자유가 아닌 이동 사유 확대로 그쳐 미봉책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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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부북면의 한 깻잎 농가의 모습.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비닐하우스와 생활하는 조립식 패널형 숙소가 나란히 설치돼 있다./밀양=강보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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