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2 (일)

어렴풋한 '범죄피해 기억' 붙잡는다…경찰 '피해자보호노트' 검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찰청, '피해자보호노트' 제도 도입 검토

범죄 피해 경위, 수사기관 조사 내용 등 메모

피의자 인권보호 위한 '자기변호노트' 피해자 버전

CBS노컷뉴스 박정환 기자

노컷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대 여성 A씨는 미성년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40대 가게 사장에게 성범죄를 당했다. 처음엔 '예쁘다', '남자친구 있느냐' 등 사적 대화를 점차 걸다가 시간이 흘러 성희롱적인 언행과 함께 추행까지 이어졌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며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싶어 홀로 마음 속에 범죄 피해를 묻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트라우마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고소를 결심했지만 이미 수년이 지난 사건을 드러낼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가해자와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자신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억' 뿐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피해 경험 속에서 쪼개지고 묻힌 기억을 세세히 되살리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범죄 피해자들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경찰이 범죄 피해자 조력과 권리 보장을 위한 새로운 제도 검토에 적극 나섰다.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피해자보호노트'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피해자보호노트는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 발생일 및 조사 과정에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피해 경위, 조사내용 등을 메모해 피해 상황에 관한 기억을 유지할 수 있게 마련된 노트다.

피해 발생 경위 기록에는 범행일시·장소·가해자 정보 등을 기재할 수 있다. 수사기관 조사 단계에서는 일시·조사장소(경찰서)·조사자·조사내용을, 재판 단계에서는 증인신문 일시·장소(법원, 몇호)·증인신문 내용 등을 기록하는 식이다.

피해 발생 이후 증거 확보 등 피해자가 주의할 사항을 확인할 수 있고, 수사 및 재판 절차와 관련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자보호제도 등도 안내한다.

아울러 피해자 '자가 체크리스트'를 통해 피해자가 스스로의 대처를 파악할 수 있다.

수사 단계 체크리스트에서는 △신고, 고소장 제출 여부 △증거 제출·확보 요청 △피해자 지원 및 보호조치 여부 △국선변호사 선임 △인권침해, 구제신청 △참고인 조서 △합의 강요 등을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은 초반 단계라 학계 의견, 예산 및 내용 검토와 현장 반응 확인 등이 필요하다. 오는 4월 혹은 하반기에는 일부 실행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노컷뉴스

자기변호노트.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보호노트는 지난 2018년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자기변호노트' 제도의 '피해자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기변호노트는 수사절차에서 피의자의 권리,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 등이 담겨 있으며 △어떤 죄로 조사받는지 △조사자가 제시한 증거가 무엇인지 △어떤 진술을 했는지 △대질자가 누군지 △제출 증거가 있는지 등을 자유롭게 메모할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권리 보장을 받고 있는지도 점검 가능하다.

자기변호노트는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제작해 전국 경찰관서에 배포·비치됐으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018년 3개월 시범운영 결과 이용자의 만족도가 67%에 이르기도 했다.

피해자보호노트는 경찰청 인가 피해자 지원 단체인 '피해자통합지원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제작했다.

안민숙 조합 이사장은 "사건 당시 피해 기억이 갈수록 흐릿해질 수 있고, 법정에서도 피의자 변호사의 질문에 당황해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피의자의 인권 보호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와 보호도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