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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제주4·3 희생자 ‘위자료’ 지원…액수·지급범위 등 과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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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특별법 개정 이후②

배·보상 성격 위자료 지원 통해 과거사 해결의 이정표 역할

6개월 용역 결과에 따라 위자료 금액·대상자·지급방식 결론

오임종 유족회장 전액 기부 서약 등 평화기금 모금 움직임도


한겨레

제주4·3유족회 관계자들이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참배하고 있다. 제주4·3유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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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정부가 조금이라도 책임을 인정한 걸 보니 격세지감입니다. 30년 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연행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수송(89·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씨는 안도의 한숨부터 먼저 내뱉었다. 오씨는 4·3 당시 부모님과 누나, 남동생이 한꺼번에 학살당한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형님은 행방불명됐다. 오씨는 “제가 살아 있을 때 정부가 책임을 인정해 너무 기쁘다”며 웃었다. 4·3 당시 8명의 가족이 학살된 이상하(85·서귀포시 중문동)씨도 “문재인 정부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감격스럽다. 법 통과에 애써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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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국회를 통과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전부개정안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원이다.

2000년 1월 제정된 4·3특별법이 진상규명과 ‘공동체적 보상’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전부개정안은 ‘개별 보상’과 실질적인 명예회복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정의로운 과거사 해결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희생자 배상·보상 문제를 포함한 4·3 문제 완전 해결은 2003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4·3 유족과 관련 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다. 제주를 찾은 여야 대통령 후보들과 도지사 후보들, 국회의원 후보들이 입 모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희생자 규모가 큰데다, 다른 과거사 사건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한 정부가 난색을 보인 탓이다. 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는 1만4533명, 유족은 8만452명에 이른다. 지난해 7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계한 보상금액만 1조5394억여원이다. 1인당 1억3천만원 정도인데, 이는 대법원이 울산보도연맹사건 확정판결 때 정한 ‘위자료’를 기준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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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 제주4·3특별법 개정안 도민 보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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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나아가지 못한 배상·보상 문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강하게 해결을 요구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배상·보상의 성격을 둘러싼 갈등도 타협점을 찾았다. 4·3 유족들은 국가의 불법적 행위에 의한 희생이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4·3특별법 성격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혼재된 상황이어서 배상·보상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에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시을) 쪽은 울산보도연맹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관련한 700여건의 소송에서 법원이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고려해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한 판례를 찾아냈다. 오 의원 쪽은 ‘배상·보상’ 대신 ‘위자료’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도록 한 4·3특별법의 부대의견에 따라 지난달 용역을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4·3특별법을 재개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위자료 액수와 수령 대상자, 일괄 또는 분할 지급 등 절차와 방식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녹록지 않다. 오영훈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4·3특별법상 유족의 정의는 보상을 염두에 둔 유족 정의가 아니다. 현재 4·3특별법상으로는 4촌 이내 방계혈족으로 제사나 벌초를 하는 경우에도 유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민법상 상속권자와 다를 수 있다. 오는 8월께 용역 결과가 나오면 보완 입법을 통해 이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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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추념식에 참석한 유족들이 각명비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살펴보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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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공권력의 잘못에 국가가 최대한 성의를 보일 수 있도록 역사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며 “이번 용역은 4·3을 모델로 삼아 다른 과거사 배상·보상 기준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의미를 뒀다.

유족들 사이에서는 향후 지급될 위자료를 평화인권기금으로 쓰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오임종 4·3유족회장은 “4·3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들은 국가의 책임 있는 조처를 얻어내게 됐다. 3만 영령의 피와 눈물이 섞인 만큼, 저에게 지급되는 전액을 인간의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금을 만드는 데 전액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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