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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김동률칼럼]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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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편 아니면 적’ 인식 사회

말하기도 쓰기도 어려운 현실

가덕도 신공항 등 ‘선심’ 남발

달콤함 뒤 곳간 파탄 직시해야

몇 년 전이다. 곱게 늙으신 노부부가 조심스레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미국에 사는 교포분인데 친지 방문차 한국에 잠시 왔다는 것이다. 작은 초콜릿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노부부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그들은 나의 칼럼을 읽고 방문한 것이다. 나는 어느 칼럼인지 알지 못한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에 김동률 칼럼이 실렸다. 그중 일부는 북미 대륙에서 발간되는 교포신문에 전재되고 있다고 한다. 나의 허락을 받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맘대로 퍼다 게재한 것이다. 나는 무단전재도 개의치 않는다. 내 글이 교포분들에게 위안이 되거나 읽을거리가 되면 만족할 뿐이다.

언젠가 추석 즈음이다. 청색 줄무늬 셔츠가 연구실로 배달됐다. 당시 내 칼럼이 연재되던 일간지 독자가 손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시골중학교 음악 교사.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의 죽음에 대한 내 글을 보고 보내왔다. 학교에까지 초대했으나 일정상 가지 못하고 대신 동영상을 보내 드렸다. 얼굴도 모르지만 아마 마음씨 고운 예쁜 분이라 상상한다.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세계일보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


내 칼럼을 읽고 아들, 딸 결혼식 주례를 정중하게 부탁해 온 대기업 임원들도 있다. 대부분 사양했지만 딱 한 분의 부탁은 응했다. 정말 내 글을 빠지지 않고 읽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례를 섰던 신랑은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사과 한 박스 받았다. 일 년에 딱 한 번, 그것도 특별한 우정이 있는 경우에만 주례를 하고 사과 한 박스를 사례로 받는다. 주례사례에 대한 나의 원칙이다.

사서함으로 온 편지들도 있다. 장기수들이 보낸 편지다. 발신이 수감자라 섬뜩하다. 그러나 애절한 사연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읽기만 했을 뿐 용기가 없어 답장은 보내지 못했다. 출옥 후 찾아오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래전 내 에세이가 고교 교과서에 게재되었다. 학교, 학원 등에서 시험문제 지문으로 종종 발견된다. 인세로 밥 사라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 인세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한 권의 교과서에는 워낙 방대한 필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위에서는 오너러블(honorable)하다고 야단이다. 말과 글의 힘이다.

엄청 욕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러려니 하지만 기분은 엄청 꿀꿀하다. 특히 사이버 공간이 발달하면서 악플이 장난이 아니다. 속수무책, 환장한다. 욕부터 퍼붓는다. 수년 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될 때다. 시청률이 굉장했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리 팩션 드라마이지만 일억삼천만 이웃 나라의 영웅을 지나치게 희화화시키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터졌다. 토착 왜구 정도는 약과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 때문에 연구실 전화기 들기가 공포스러웠다. 해당 방송사는 팝업 창을 띄워 방송사와 무관한 개인의 의견임을 밝혔다. 어떻게 알았는지 심지어 <딸아이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협박도 있었다. 전전긍긍, 그날 이후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 출연을 끊었다. 의기소침해진다.

자세하게 밝힐 순 없지만 스토커도 생긴다. 내 글이 따뜻하다고 했다. 그러는 스토커는 대개 여성분들이고 교류(?)하고 싶다는 것이다. 딱히 대안이 없다. 아내가 눈치채지 않게 전화, 문자를 차단하는 수밖에.

최근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 친구들이 당분간 나와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혀 그럴 사람들이 아니었다. 속내를 알아보니 세계일보 칼럼이 문제였다. 지금 내는 수신료도 아까워 죽을 지경인데 웬 미친 소리로 혹세무민하느냐는 비판이었다. 내 주변에는 온건 진보 또는 중도성향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KBS를 방송사 취급 않는 데 많이 놀랐다. 그리고 그 유탄은 고스란히 내가 맞았다.

이처럼 말의 힘, 글의 힘은 크고 무섭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는 말하기도, 쓰기도 어렵다. 우리 편이 아니면 바로 적이라는 의식이 인지적 스키마(schema)로 굳어진 시대다. 가장 공정해야 할 대법원장마저 노골적으로 진영을 편들고 있다. 이런 험악한 시대에 주장이 담긴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또 한마디 해야겠다. 가덕도 신공항 사태가 보여주듯 이 나라가 거덜 나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산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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