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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특파원리포트] 日 ‘방사능 우럭’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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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

기준치의 5배 달하는 세슘 검출

日 정부는 ‘먹거리 안전’만 홍보

원인 해명… ‘원전 공포’ 해소해야

일본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잡힌 방사능 우럭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달 22일 후쿠시마현의 최북단 신치마치 앞바다 8.8㎞에서 잡은 우럭에서 1㎏당 500㏃(베크렐)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일본 정부 기준(1㎏당 100㏃)의 5배다.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의 보다 엄격한 자체 기준(㎏당 50㏃)에는 10배에 달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어종에서 방사성 물질 검출은 재작년 2월 이래 2년 만이다.

세계일보

김청중 도쿄특파원


일본 정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농림수산물·식품의 안전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부각하려던 의도에 찬물이 쫙 끼얹어졌다.

우치보리 마사오 후쿠시마현 지사는 지난달 17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농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현(縣) 내 재배 중인 농산물 중 기준치 초과는 제로(0)다. 쌀은 5년 연속, 야채·과일은 7년 연속 기준치 초과가 없다”고 했다. 슬라이드엔 ‘수산물 (방사성 물질 기준치 이상 검출) 0건… 2020년 2월25일 출하 제한 어종 모두 해제’라고 쓰여 있었다. 이젠 홍보 내용과 슬라이드를 바꿔야 할 판이다.

연안에서 8.8㎞나 떨어진 곳에서 방사능 우럭이 잡힌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유력한 설명은 이렇다. 2011년 방사성 물질이 대규모 방출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원전 항만에 그물을 쳐놓고 있다. 이 안에 있던 우럭이 탈출했을 가능성이다. 재작년 그물 안쪽에서 조사를 위해 잡은 우럭에서 1㎏당 900㏃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적이 있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 누출에 대해 “언더 컨트롤(Under Control·통제 하)”(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이라는 일본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오염 어류의 이동 차단에 허점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멍을 빠져나간 방사능 우럭은 일본 정부 대응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의 농림수산물·식품 선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후쿠시마 재건 담당인 히라사와 가쓰에이 부흥상이 그랬다.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한국 매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명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방사능 우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현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알리겠다며 “만에 하나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에는 절대로 유통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성 당국자는 설명회에서 방사능 우럭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어획된 우럭을 회수해 폐기했다.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전인수식 홍보로는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 기준치 초과 방사능 오염 우럭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오히려 일본 국민과 주변국의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산 선택을 기피한다는 일본 국민은 원전 사고 10주년을 맞는 지금도 10%대다.

일본 당국의 일방통행식 행보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일본 명칭 소위 처리수) 해양 방류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다핵종제거설비(ALPS)에서 한 번 정화한 오염수에 물을 넣어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배출하면 문제없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후 일본산 농림수산물·식품의 전반적 이미지 추락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어민에겐 궤멸적 타격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농림수산물·식품의 수출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기준 9223억엔인 수출액을 2025년 2조엔, 2030년 5조엔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안전성을 홍보하려는 것도 이런 계획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일본의 관련 품목 주요 수출 지역은 홍콩, 중국, 미국, 대만, 베트남, 한국 순이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미국 등 상위 순위 6개 국가·지역은 원전 사고 후 일본산 농림수산물·식품에 대해 지역별·품목별 수입금지 조치를 하는 국가·지역이기도 하다(수입규제 조치는 6개국 포함 15개국·지역). 여기를 뚫지 않고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안전성 바탕 위에서 수출 증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수출 증대라는 목표 위에서 안전성 홍보가 기획되는 상황이 아니기를 바란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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