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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설왕설래] 계란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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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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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투척은 중세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한다. 당시 죄수들에게 칼을 씌운 다음 눈을 못 뜰 정도로 계란을 마구 던져 모욕을 주는 형벌이 있었다. 계란 투척이 정치적 항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국의 조지 엘리엇이 1872년 쓴 장편소설 ‘미들마치(middlemarch)’가 출간된 이후의 일이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인 브룩(Brooke)이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선거 유세를 하던 도중 형편 없는 공약을 제시하다가 군중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고 결국 유럽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맞는 사람에게 모멸감과 불쾌감을 주는 계란 투척은 피해자가 원할 경우 폭행죄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무릅쓰고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기 위해 계란을 던지곤 한다. 사회적 영향력과 주목도가 큰 정치인이 주로 투척 대상이 된다. 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도 계란 세례를 받았다. 첨예한 갈등 현장을 찾은 국무총리, 장관, 지자체장도 수시로 계란을 맞는다.

계란을 맞은 후 반응은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는 2002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쌀지킴이 대회에서 연설 도중 한 농민이 던진 계란에 아래 턱을 정통으로 맞았다. 후일 “당시 심정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안 풀리겠나.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유머로 넘겼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민생 탐방차 강원도 춘천 중앙시장을 방문했다가 난데없이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이 대표에게 계란을 던진 사람은 춘천 레고랜드 설립을 반대하는 문화재 보존 시민단체 회원이었다. 이 대표가 처벌하지 말라는 뜻을 밝히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6개월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돌입한다. 앞으로 대권 고지까지 고산준령을 여러 번 넘어야 하는 이 대표는 이번 계란 투척 사건을 액땜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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