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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아침을 열며] 언론의 자유는 사회의 산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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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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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3불(不)’ 체인 숙주를 먹고 산다. 상황의 ‘불확실성’이 정서적 ‘불안’을 야기하고, 그 결과로 사회적 ‘불신’이 강화되는 체인 숙주가 그것이다. ‘확증편향’이라는 기저질환이 있다면 가짜뉴스는 우리에게 더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 이로 인한 여론의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치명적 중증 질환으로 발전한다.

가짜뉴스를 없애면 된다고 단순히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무균 청정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대 의학은 바이러스를 일일이 잡으러 뛰어다니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백신과 치료제로 인체를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간다.

최근 여당에서 발의한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우리 사회의 가짜뉴스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직접 뛰어다니겠다는 얘기다. 매우 현실성 없고, 또한 위험한 접근이다. 무한대의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콘텐츠에 의해 유통되는 가짜뉴스 바이러스를 무슨 수로 모두 잡겠다는 얘기인가. 선별적 응징이라는 정치적 의혹을 벗어날 묘수는 있는가. 더욱이 가짜뉴스의 징벌 대상에 언론을 포함하는 것은 인체의 세포가 숨 쉴 공간을 갖지 못해 생기는 치명적 역기능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자유는 산소다. 사회 유기체 내부에서 산소의 흐름은 건강한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자유의 산소가 폐에서 심장을 통해 뇌와 전신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그 유기체는 바로 생명을 다한다. 공기 속에 불순물이 있다고 산소의 공급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 시민 사회 전체가 건강한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백신과 치료제와 같은 보다 스마트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건강한 진보에는 늘 자유의 정신이 있었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은 모든 신앙인이 신 앞에 독립적으로 서는 자유를 통해 중세교회의 폭정을 극복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에서 외친 자유 정신은 서구 민주주의의 서막이었다. 백년 전 3.1운동은 암울한 식민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자유 운동이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은 전제 통치를 민주 정치로 진보하게 한 시민 자유 운동이었다. 사회의 진보를 얘기할 때 반드시 자유 정신의 진보를 함께 얘기해야 하는 이유가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있다.

가짜뉴스가 건강한 시민 사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기획된 가짜뉴스라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가짜뉴스라는 빈대 잡느라 표현의 자유라는 초가삼간을 모두 태울 수 있는 법제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가짜뉴스 바이러스 창궐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인포데믹’이라고 불리는 가짜뉴스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정부는 최근 구체적이고 엄격한 규제 방안을 이미 내놓았거나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규제의 대상을 글로벌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플랫폼에 한정하고 있다. 언론을 또 다른 방식으로 제어하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언론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 진보의 숭고한 역사적 의미에 비추어 스스로를 엄중히 성찰해야 한다. 자정적 실천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고 수행해야 한다. 팩트가 곧 백신이고 치료제다. 그래서 팩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언론이 산소 같은 자유에 수반되는 책무성을 상실한다면 결국 시민 사회에서의 퇴출을 피하기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일보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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