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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방탄소년단, 그래미 '보수의 벽' 못 넘었지만 K팝 새 역사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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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그래미 시상식 단독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 CBS/레코딩 아카데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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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트로피는 놓쳤지만 한국은 물론 세계 대중음악사에 남을 의미 있는 무대였다.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대중음악인 최초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고 단독 공연을 펼쳤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주류 음악계에 안착했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방탄소년단은 15일(한국시간) 한국 대중음악인으로선 처음으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수상 후보자로 호명됐다. 시상식의 노른자위라 할 만한 본상 4개 부문은 아니지만 팝계의 톱스타들이 경쟁하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이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로 이 부문 후보에 오른 방탄소년단은 미국 팝계를 대표하는 두 여성 가수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Rain On Me’에 상을 내줬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테일러 스위프트에 저스틴 비버까지 경쟁자들이 역대급으로 쟁쟁했기에 수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방탄소년단은 물론 K팝에 커다란 교두보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에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이들 중에는 중년 이상의 백인이 많다”며 “전반적으로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인 편이어서 ‘BTS 현상’에 대해 체감하는 부분이 덜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후보자들 가운데서도 톱스타들에게만 주어지는 축하 공연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 역시 뜻깊다. 서울 여의도의 한 고층빌딩 등에서 사전 녹화된 이번 공연은 공연장에서 건물 옥상 헬리패드로 이어지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줬다. 그래미 축하 공연 중 유일하게 미국이 아닌 곳에서 촬영됐다. 시상식 사회를 맡은 유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는 “이곳에 올 수가 없어서 한국에 세트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상을 하나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시상식 후 방탄소년단은 소속사를 통해 “쟁쟁한 뮤지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염원하던 단독 공연까지 펼쳐 매우 영광스럽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다음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선 두 명의 한국계 미국 음악인들이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데이비드 앨런 밀러가 지휘하고 미국 알바니 심포니가 함께 호흡을 맞춘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 부문을 수상했다. 앞서 2006년, 2011년 두 차례 그래미 후보에 올랐던 그는 세 번째 만에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용재 오닐은 한국전쟁 당시 고아가 돼 미국으로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 출신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다. 또 한국계 피를 이어받은 가수 앤더스 팩은 '베스트 멜로딕 랩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며 3년 연속 수상자가 됐다. 앤더슨 팩은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혼혈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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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가수 비욘세가 15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6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RB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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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선 흑인 음악인들과 힙합 장르, 여성 가수들에게 주요 상을 몰아준 점이 눈에 띄었다. 본상 4개 부문은 모두 여성 가수들이 휩쓸었다. ‘올해의 레코드’는 ‘Everything I Wanted’의 빌리 아일리시가 차지했고, ‘올해의 앨범’은 ‘Folklore’의 테일러 스위프트, ‘올해의 노래’는 ‘I Can’t Breathe’의 허(H.E.R.), 최우수 신인상은 메건 디 스탤리언이 받았다. 비욘세는 ‘베스트 R&B 퍼포먼스’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이번 시상식의 최다 수상자가 됐고, 데뷔 이후 28번째 트로피를 추가하며 역대 그래미 최다 수상 여성 아티스트가 됐다.

지난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흑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ㆍ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의 영향을 반영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올해의 노래’에 선정된 ‘I Can’t Breathe’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를 촉발시킨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관한 곡이고, ‘베스트 R&B 퍼포먼스’를 받은 비욘세의 ‘Black Parade’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노래다. 축하 무대에선 래퍼 릴 베이비가 경찰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곡인 ‘The Bigger Picture’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김영대 평론가는 "음악 산업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흑인과 여성 아티스트를 위한 잔치였다고 할 수 있다"면서 "최근의 미국 내 정치·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역사적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주최 측의 의지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도 그래미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여전하다. 김작가 평론가는 “전체적으로 (보수성에서 벗어나려는) 그래미의 지향점과 수상을 결정하는 집단의 성향 간의 괴리가 다소 느껴지는 결과”라면서 “캐나다 출신 흑인 가수인 위켄드가 단 한 개 부문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는 건 그래미의 여전한 한계”라고 지적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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