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밀어붙이는 검찰 수사권 박탈은 "소가 밭을 밟아 곡식을 망친 벌로 소까지 빼앗는다"는 혜전탈우(蹊田奪牛)의 고사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하희의 아들 하징서가 진영공을 시해하고 권력을 탈취한 사건이 발단이 됩니다. 천하 패권을 꿈꾸던 초장왕은 바로 옆에 있는 진나라에서 벌어진 난리를 보고받습니다. 손숙오를 비롯한 초나라 대신들은 즉시 진나라를 공격해 하징서를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장왕은 대군을 이끌고 진나라로 향합니다. 하징서는 하희의 본거지인 주림으로 도주했지만 결국 사로잡혀 극형을 받습니다.
논란은 진나라의 혼란을 평정한 뒤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장왕은 새로운 군주를 세우지 않고 진나라를 초나라에 귀속시켰습니다. 진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임명한 뒤 귀국한 것이지요. 초나라 사람들은 영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늘었다며 환호했습니다. 대신들은 초장왕을 칭송하며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반면 진나라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반역자만 처단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라마저 빼앗았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약소국 진나라는 초나라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진나라의 은인이 등장합니다. 초장왕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던 신숙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초나라가 진나라의 반란을 평정할 무렵 제나라 사신으로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왕이 진나라를 병합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그는 초나라가 반역자인 하징서를 죽인 것은 옳지만 이를 빌미로 진나라 국권까지 빼앗은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왕에게 대놓고 진나라를 돌려주라고 주장하기에는 부담이 컸습니다. 다른 대신들이 영토를 넓혔다며 축하하는 분위기에서 직설적인 말로 찬물을 끼얹었다가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혜전탈우' 이야기를 떠올린 이유입니다.
진나라 난을 평정하고 영토까지 넓힌 공로를 축하는 자리에서 그는 장왕에게 은근하게 말을 겁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요. 어떤 사람이 남의 밭에 들어간 소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 소가 밭을 밟는 바람에 많은 곡식이 쓰러지고 뿌리가 뽑혔습니다. 밭주인이 화가 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소를 끌고 가서는 소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대왕께서는 밭주인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초장왕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습니다. "밭을 밟아 곡식이 상했다고 소까지 빼앗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피해를 입은 곡식을 보상해야 하지만 소는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신숙시는 이렇게 말하는 왕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초장왕 스스로 깨닫게 할 심산이었지요. 역시 초장왕은 센스가 있고 영리한 지도자였습니다. 신숙시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군. 진나라를 병합한 과인을 꾸짖으려고 한 이야기가 아닌가. 알겠네. 내가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겠네." 장왕은 이 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 새로 군주를 앉히고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이 일로 초장왕의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패자의 위치로 한 단계 올라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진나라를 돌려준 것은 작은 이익을 포기하면서 큰 명분을 얻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여권이 검찰 개혁을 이유로 중수청 출범을 강행한다면 혜전탈우의 잘못을 범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검찰이 잘못한 일이 있거나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이를 고치는 수준에 그쳐야 합니다. 개혁을 명분으로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 검찰을 허수아비로 만든다면 소가 밭을 밟아 곡식을 망쳤다는 이유로 소를 빼앗은 밭주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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