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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때 명동성당 지킨 김병도 몬시뇰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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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故 김수환 추기경 비서실장…"'청빈의 삶' 약속하고 실천"

연합뉴스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
(서울=연합뉴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명동성당 주임신부로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monsignore·세례명 프란치스코)이 24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2021.3.24 [서울대교구 제공. 재배포 및 DB금지] (끝)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명동성당 주임신부로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병도 몬시뇰(monsignore·세례명 프란치스코)이 24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1935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김 몬시뇰은 1961년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6년간 해군 군종신부를 거쳐 미국 듀케인대학에서 교육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15년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실장 겸 홍보 담당으로 활동했다. 이후 가톨릭 출판사 사장과 서울 명동·가락동·구의동 본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에 힘썼다.

그는 1987년 교구 사무처장이자 명동성당 주임신부로서 6·10 민주항쟁의 보루였던 명동성당을 지킨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전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서품 동기로 올해 사제 수품 60주년(회경축)을 맞았다.

김 몬시뇰은 1991년 경기 광명시의 '글라라의 집'을 시작으로 1997년 경기 광주시 '프란치스코의 집', 1998년 서울 광진구 구의동 '모니카의 집', 2002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자애로운 성모의 집' 등 4곳의 무의탁 노인공동체를 설립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서임됐다. 몬시뇰은 가톨릭교회에서 덕망이 높은 고위 성직자에게 주는 칭호다.

김 몬시뇰은 2010년 은퇴한 뒤로 원로사목 사제로 지냈다.

그는 자신의 세례명인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청빈의 삶을 약속하고 실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적 예물이 생기면 모두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해 내놓았다고 서울대교구 측은 전했다.

주요 역서로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사제 수품 40주년을 기념해 낸 회고록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등이 있다.

회고록에는 김 몬시뇰이 1970년대 군사정권을 겪으며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김수환 추기경, 고(故) 지학순 주교 등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빈소는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장례미사는 26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다.

장지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이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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