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불교 돕다가 해직된 기독대 교수 “개천절도 품는 교회 돼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손원영 서울기독대 해직 교수
“기독교는 더 이상 외국의 종교가 아니에요. 종교인도 개신교 인구가 가장 많고 이미 한국의 종교가 됐어요. 한국의 얼과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한국 교회가 안 하거든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거예요. 개천절까지 품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개신교 신자가 저지른 불상 훼손을 대신 사과했다가 기독교계 대학에서 쫓겨난 해직 교수가 또다시 종교간 화해를 호소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우자고 말한다. 다른 종교뿐만 아니라 빈자와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까지 교회가 품자고 주장한다. 가슴을 활짝 열어야만 망가진 교회가 싫어서 떠난 신자들이 돌아온다는 호소다. 지난달 29일로 1,502일째 복직 투쟁을 벌이면서 새로운 교회상을 그리는 손원영 서울기독대 해직 교수의 이야기다.
한국일보

2016년 1월 개신교 신자가 불교 사찰의 불상을 훼손한 사건을 기독교인은로서 대신 사과했다가 다음해 대학에서 해직된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 손 교수는 당시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손 교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왜 쫓겨났나


2016년 1월 개신교 신자 한 사람이 경북 김천 개운사의 불상을 고의로 훼손한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들끓었지만 개신교계는 조용했다. 손 교수는 평소 이웃 종교와 대화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기독교 교육학자의 입장에서 너무 창피했기에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모금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이듬해 학교에서 쫓겨났다. 대학은 ‘신앙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은 언행과 약속한 사항에 대한 불이행 등 성실성 위반’을 이유로 손 교수를 파면했다. 지난달 2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나설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웃 종교와 대화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입장에서 사과하고 훼손 이전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가 생각했죠.”

손 교수는 운명적으로 종교 평화를 사유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고 스스로 설명한다. 부당해고라고, 복직시켜달라고 낸 소송에서 두 번이나 이겼지만 아직도 돌아가지 못했다. 대학은 항소를 포기했지만 뭉개고 있다. 손 교수는 투쟁을 이어간다. 한때는 돌아가야 할 연구실 앞에서, 최근에는 사태를 방관하는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개인적 이유를 떠나서 복직에는 한국 종교가 이웃 종교에 배타적인 문제를 극복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거죠. 꼭 돌아갈 겁니다.”
한국일보

손원영 서울기독대 해직교수는 최근까지 서울기독대 연구실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펼치다가 최근에는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은 복직 소송에서 두 번이나 지고도 손 교수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손 교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가 그리는 이상적 교회는


복직은 시작일 뿐이다. 망가진 한국 교회를 개혁하려면 청사진이 필요하다. 손 교수는 그 모습을 그려 최근 책으로 내놨다. ‘내가 꿈꾸는 교회: 개벽교회론 서설’이다. 이상적 교회상 100가지를 담았다. 진리와 정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무엇보다 신자가 즐겁고 떳떳하게 찾을 수 있는 교회가 그려져 있다. 예컨대 새로운 교회는 ‘노래하고 춤추고 자전거 타는 놀이 공동체’이며 ‘부끄러움을 아는 공동체’이자 ‘왕따가 없는 소수자의 공동체’여야 한다.

“마르틴 루터 이후로 500년 동안 종교개혁을 해왔음에도 지금의 교회는 당시의 가톨릭보다 더 부패한 거죠. 부동산 투기는 너무나 사소하고 교회 세습, 성직 매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임계점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마음에 갖고 있는 개벽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개혁으로는 안 되고 근본적인 새로움의 교회가 필요합니다.”

이웃 종교와 화해하고 배우자는 주장은 한국 종교계에서는 곧잘 곡해된다. 교회를 허물고 절이나 성당을 만들자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손 교수는 교회가 부끄러운 모습을 씻어야 신자가 돌아온다고 역설한다. “한국 교회가 너무 부패하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도 교회를 안 나갑니다. 제가 가나안(교회 '안 나가'를 뒤집은 말) 신자를 수없이 만났어요.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포기한 것이 아니거든요.”

“(교회는)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품는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창녀나 세리, 환자들과 어울리셨단 말이에요. 그 소수자들을 우리 시대로 옮기면 (교회에서) 배제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경제적 약자일 수도, 성소수자일 수도 있지요. 그게 누구든 교회가 함께해야 합니다.”

교회가 부끄러움 알아야 변화


손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목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들을 신자로 둔 ‘재가수도 가나안 공동체’(교회)다. 출석부도 예배당도 없지만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면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종종 모임을 갖는다. 참석자의 얼굴은 매번 바뀐다. 신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나아가 이상적 교회를 만드는 발판이다. “제 교회가 한국에서 제일 큽니다. 예전에는 신자가 200만명 정도였는데 명성교회 사건 때문에 50만명이 늘었어요. 교회들이 부끄러움을 좀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면 이상적 교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일보

손 교수는 올해 3월 그가 꿈꾸는 교회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망가진 한국 교회를 대신할 이상적 교회상 100가지를 제시한다. 부제인 '개벽교회론 서설'은 어감이 딱딱해 제목에서는 탈락했지만 교회에는 '개혁'을 넘어선 '개벽'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손 교수의 지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