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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기후위기 불안 커가는데, ‘녹색정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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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줄이기·전기차 타기 등

생활속 기후위기 대응나선 사람들

거대양당에 휩쓸린 선거판에 허탈

오세훈 시장 기후 공약 아예 없고

부산은 신공항이 환경이슈 압도

국회 입성 의원들도 목소리 못내

정의당·녹색당은 내부 문제 진통

기후위기 대응 공론장 절실한데

부동산·일자리 등 큰 이슈에 묻혀


한겨레

녹색당 김예원 공동대표(왼쪽부터), 기본소득당 신지혜 서울시장 후보, 정의당 여영국 대표, 미래당 오태양 서울시장 후보, 진보당 송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일 국회에서 4.7 재보선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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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뉴스에서 소개하지 않는 기후위기·젠더 키워드를 들고 나오는 후보를 뽑았다.”(20대 여성)

“기후위기 대응에서 대도시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큰데…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에 기후위기 의제는 완전히 실종됐다. 고민 끝에 투표하지 않았다.”(40대 남성)

“이번에 뽑은 후보를 100%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후위기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후보를 뽑는게 낫다고 생각했다.”(20대 여성)

기후변화, 기후위기는 정치권력을 놓고 치러지는 세계 각국 선거에서 최우선 의제가 됐다. 한국도 그 대열에 뒤늦게 동참했다. 지난해 국회에선 여야가 함께 기후위기 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정작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전기차 타기 등 생활 속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하는 시민들은 2022년 대선 전초전이라는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대 양당 후보를 뽑아야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소수정당 후보에 소신투표를 했다고 해도 만족스럽지 못 했다. 기후위기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은 늘어나는데 이들의 표심을 대변해 줄 정당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선거였다.

서울시는 이렇다할 기후위기 관련 공약이 없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을 맞이하게 됐다. 부산에서는 기후·환경 이슈가 지역개발 논리에 압도됐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지난해 국회에 입성한 민주당 양이원영·이소영 의원의 역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초당적 협력’에 나서자 환경단체 등이 반대해온 신공항 건설은 일사천리로 ‘이륙’했다.

탄소중립 목표 상향을 촉구해온 정의당은 당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다. 이런 ‘녹색정치 공백’ 상태에서 기후운동을 하는 청년들은 ‘김공룡’이라는 가상 후보를 내세우며 그들만의 ‘웃픈’ 선거를 치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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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녹색정치 구심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런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은 없다.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이 없던 청년·여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큰 기대를 받으며 출발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과천시장 후보였던 서형원 현 녹색당 당무위원이 득표율 19.25%로 3위를 기록하며 나름 선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풀뿌리·생활정치를 강조하며 현실정치의 문을 두드렸지만, 정치적 입지는 꾸준히 약진하는 유럽의 녹색당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16년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18만2301표(0.76%)에 그쳐 원내 입성에 실패했고,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 논란 속에 게도 구럭도 다 잃은 2020년 총선에선 정당투표 5만8948표(0.21%)로 더 쪼그라들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신지예 후보가 여성·청년 후보로 이목을 집중시키며 4위(8만2874표, 1.67%)를 했을 때보다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 셈이다. 녹색당은 2022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준비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린 상태지만, 당내 폭력 문제 등 선결 과제가 많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한국정치는 양당제라는 구조적 벽이 견고하고, 그러다보니 녹색정치를 내건 정당이 실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동산, 일자리 등 늘 근대적 이슈만이 주목받는다. 녹색 아젠다를 견인하고 확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녹색당의 경우 시민운동을 하던 문제의식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 상태라면 기후위기, 생태 전환을 꿈꾸는 시민의 기대가 모인다해도 이를 기회로 포착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2018년 녹색당, 2021년 팀서울로 두 차례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던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정당 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선거였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기후위기 시대의 정당의 역할은 공론장을 열어주어 시민이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정당 안에서 이 과정이 생략돼 있다”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현재 정치가 (기후위기 문제에 민감한) 청소년과 청년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 얼마나 훌륭한 생태정치를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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