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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가장, 곰돌이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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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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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 누군가에게 집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최초의 인간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이란 점이다. 집은 사는 동안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이슈 안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만들어지는 집이란 공간에선 수많은 감정이 충돌한다.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다. 집은 그 자체로 감정의 집합체인 거다. 회화·도예·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집이라는 소재에 천착해온 강준영 작가에게 집은 '사랑의 단상'이었다. 오랜 시간 서정적인 사랑이 가득한 집을 작품에 담았다.

거기엔 그가 유년 시절을 한국과 타국을 오가며 지냈던 영향도 컸다. 낯선 풍경 속에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놓일 때면 그는 한국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때마다 떠오른 건 3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과 그 집 뒷마당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던 할머니의 항아리들이었다. 그에게 집은 곧 할머니의 항아리였던 셈이다. 그의 작품에 항아리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집 이면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존재가 무엇인지 묻고, 예쁘지 않은 감정들과 마주한다. 신작 'How to be Hero'는 가부장 제도의 산물인 '가장'을 꼬집는다. 가장은 남성 호주戶主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1~2인 가족부터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오늘날 가장은 더 이상 남성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가장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곰돌이 인형에 비유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사랑의 민낯이 드러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만날 수도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노와 환멸, 연민과 예속, 기대와 실망 등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건축물의 도면을 그리는 제도製圖 행위를 차용했다는 점이다. 선, 문자, 기호 등을 사용해 건축물의 형상과 구조, 크기를 도면으로 만들 듯 작가는 선과 면, 흑과 백, 도형과 글귀로 작품을 완성했다.

집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집이라는 언어' 전시는 오는 5월 1일까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열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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