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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20년 만의 미군 철수 눈앞…아프간 여성들 “탈레반 돌아올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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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교육에 유연해졌다지만

“탈레반, 세상을 속여” 믿지 못해

여성·어린이 대상 폭력 최근 급증


한겨레

12일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에서 한 군인 가족이 국방부가 분배하는 식량을 받고 있다. 헤라트/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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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만에 이뤄지는 미군의 철수는 그곳 여성들에게는 20년 전의 ‘암흑’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직장도 포기해야 하며, 공공장소에서는 얼굴까지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하는 세계로 말이다.

14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보도했다. 미군 철수 뒤 아프가니스탄에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 알 수 없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축소됐던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의 힘이 세질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와 탈레반 간의 전투가 격화되고 만약 탈레반이 승리한다면 여성 인권은 크게 후퇴할 것이 분명하다.

아프가니스탄 서북부 헤라트에 사는 헤라트 대학생 바시레 헤이다리는 이날 <가디언>에 “미국인들이 떠나가고 있다”며 “우리는 탈레반과의 끔찍한 나날을 앞두고 있다. 탈레반이 내가 하는 일은 고사하고, 집에서 못 나가게 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딱 하나의 소원이 있다. 학업을 마치고 일하는 것인데, 탈레반이 온다면 그렇게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여성 교육 문제에 대해 과거와 달리 유연한 태도를 보이긴 한다. 헤이다리가 희망을 거는 부분이다. 그는 “만약 그들이 남녀공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성 전용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헤이다리 옆에 있던 경제학과 학생 살마에라는 탈레반의 태도 변화에 회의적이다. 그는 “탈레반이 세상을 속이고 있다”며 “그들은 기술을 사용하고, 트위터도 쓰지만, 생각은 20년 전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살마에라는 “나는 더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텐데, 탈레반은 원래 그렇다.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말했다.

여성 학교를 운영하는 사회활동가 바시레 사파 테리는 “사무실로 찾아와 탈레반이 언제 복귀할지, 그들이 여성 교육을 유지할지 물어보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아졌다“며 여권 후퇴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 특히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이 급증했다. 이날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여성 사상자 수는 지난해 1분기보다 37% 늘었고, 아동 사망자 수는 23% 증가했다. 지난해 9월 아프가니스탄 평화 협상 이후 미군의 철수가 예고되면서 오히려 폭력 사태가 증가한 것이다. 탈레반의 통제력도 지난 20년간 어느 시점보다 큰 상황이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2001년 탈레반 몰락 이후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찾은 아티파 알리자데 기자는 “내 직장은 보안 문제로 동료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고, 아버지는 잠시 일을 멈추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6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언론계 종사자 8명이 살해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기반을 둔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따르며 이를 극단적으로 적용했다.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일할 수 없고, 부르카를 입어야 하며,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 한다. 서구식 교육과 도서관 등도 모두 없앴고,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불교 문화재 ‘바미안 석불’ 등을 모두 파괴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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