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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생명체 키워온 자양분인데 환경파괴범?…“억울합니다”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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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노박테리아 연대기

[경향신문]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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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난 지도 어느새 달포, 이제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조상은 봄비가 내려서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곡우를 농사철의 시작으로 여겼다. 실제로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모내기 철에 들어간다. 모내기가 끝나고 날이 더워지면서 보통 논에는 물개구리밥이 들어찬다. 비단 논뿐 아니라 연못이나 개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 물풀이다. 혹시 언뜻 눈 결정을 연상시키는 잎사귀가 물 위에 많이 떠 있는 걸 보았다면, 십중팔구 물개구리밥이다.

주지하다시피 개구리는 벌레를 잡아먹지 풀을 뜯지 않는다. 물개구리밥이라는 이름은 보통 개구리가 많이 사는 곳에 이 물풀이 많아서 붙여진 게 아닌가 싶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이 작은 풀이 벼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 번식력으로 논물을 덮어 증발을 더디게 하여 그만큼 물 대는 수고를 덜어준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물개구리밥은 논에 천연 질소비료를 준다. 혼자서는 아니다.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남세균)’라는 광합성 미생물과 함께한다.

시아노박테리아를 품은 물개구리밥

경향신문

물위에 떠있는 개구리밥.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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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년 전 출현한 시아노박테리아
식물보다 훨씬 앞서 광합성 시작
벼농사 시초부터 물개구리밥과 공생
더 많은 생물이 진화하는 데 기여
남극에 사는 크루코키디옵시스는
화성 개척의 선봉장으로 꼽히기도

엄밀히 말하면, 시아노박테리아는 특정 세균의 이름이 아니라 ‘시아노박테리아문’의 명칭이다.

‘문’은 ‘종·속·과·목·강·문·계’로 나누는 생물 분류체계에서 ‘계’ 다음으로 큰 분류 단위이다. 그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이 체계를 인간에 적용해보면, ‘사람종·사람속·사람과·영장목·포유강·척삭동물문·동물계’로 분류된다.

시아노박테리아는 크게 다섯 계통으로 나누는데, 모두 광합성을 하지만 계통에 따라 모양과 특성이 다르다. 증식 방법만 보더라도, 단세포로 살면서 어느 정도 자라면 둘로 나뉘는 것도 있고, 서로 붙어 사슬 모양으로 자라거나 군체를 이루는 것도 있다. 그리고 일부는 광합성에 더해 질소고정(‘흙진주’, 경향신문 2020년 2월7일자 18면 참조)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광합성에 필요한 3대 요소는 빛과 이산화탄소, 물이다. 심하게 가물지만 않으면 이 셋은 늘 풍족하기에, 대개 질소를 비롯하여 미네랄 영양소가 광합성 효율을 좌우한다. 자연환경에서 이들의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작물을 계속 재배하려면 꾸준히 비료를 주어야 한다. 물개구리밥은 ‘아나베나 아졸레(Anabaena azollae)’라는 시아노박테리아를 품어 이런 제약에서 거의 벗어나 번성의 길을 찾았다. 물개구리밥과 시아노박테리아의 돈독한 사이는 이들 이름(학명)에 그대로 드러난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종명 ‘아졸레’는 물개구리밥의 속명 ‘아졸라(Azolla)’에서 유래했다.

물개구리밥은 조그만 잎(길이 1㎜ 정도) 뒷면에 시아노박테리아를 위한 작은 방을 마련해두고 있는데, 방마다 아졸레가 2000~5000마리씩 들어와 산다. 이들은 열심히 질소고정을 해서 물개구리밥에게 질소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으로 숙박비를 대신한다. 한번 맺어진 공생 관계는 물개구리밥 평생 그대로 조화롭게 지속한다. 방에 사는 파트너가 집주인의 상태에 맞추어 증식 속도를 조절하는 정도이다.

이러한 행복한 동행 덕분에, 물개구리밥은 인류가 벼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초록 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다시 말해, 인공 질소비료가 없던 시절에도 이들 공생체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쌀 소출을 담보해주었다. 물개구리밥·시아노박테리아 공생체는 친환경 생물비료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면을 덮는 탁월한 능력은 제초와 모기 방제에, 화학물질 흡수 능력은 수질 정화에 활용되고 있다.

경이로운 시아노박테리아

청록색을 띠는 시아노박테리아는 식물과 똑같이 광합성을 한다. 말하자면, 빛을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당분(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내뿜는다. 사실 식물 세포에서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체 자체가 시아노박테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략 15억년 전쯤에 원시 지구에 살던 어떤 미생물이 자기보다 작은 시아노박테리아를 잡아먹었다. 그런데 포식자가 소화를 시키지 못해 먹이가 된 시아노박테리아가 안에서 우연히 살아남는 일이 발생했다. 반대로 포식이 아니라 감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둘은 더는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점차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자칫 소설처럼 들릴 수 있지만, 많은 증거를 바탕으로 현재 생물학 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공신력을 얻은 생물학 이론이다.

원조 광합성 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는 약 30억년 전에 출현했다. 그때부터 이들은 원시 지구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나갔다. 광합성 결과로 발생한 산소가 거의 무산소 상태였던 대기로 들어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식물보다 훨씬 앞서 광합성을 시작한 시아노박테리아 덕분에 식물이 출현할 즈음에는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이미 1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석 증거에 의하면, 공기에 산소가 상당히 축적되는 시점부터 다양한 생명체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산소 호흡은 생명체에게 더 많은 칼로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산소를 머금은 공기는 더 크고 다양한 생물이 진화할 기회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축적된 산소(O2) 일부는 오존(O3)으로 전환되어 층을 이루었다. 오존층은 자외선에서 생명체를 지키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특히 생명체에게 가장 해로운 짧은 파장의 자외선을 거의 모두 흡수한다. 이로써 생명체 육상 진출의 필요조건을 해결했다. 한마디로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상 다양한 삶의 터전을 닦은 셈이다.

시아노박테리아 가운데에는 화성 개척의 선봉장감으로 꼽히는 것도 있다. 남극 ‘드라이 밸리(Dry Valleys)’에 사는 ‘크루코키디옵시스(Chroococcidiopsis)’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 면적의 거의 5배에 달하는 드라이 밸리 기온은 영하 80도에서 영상 15도를 오르내린다. 게다가 적어도 지난 200만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그나마 겨울에 조금 내리는 눈마저도 거센 바람에 흩날려 버린다. 지구에서 화성을 가장 닮은 곳으로 꼽힌다. 만약 크루코키디옵시스가 화성에서 광합성을 할 수만 있다면, 화성의 대기는 물론이고 토양도 바꾸어놓을 것이다. 이들의 조상이 원시 지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잘못된 만남

검정말에 붙어사는 일부 박테리아
자기방어 형태로 독소 만들어
조류의 집단 폐사 원인으로 작용
환경 오염시키는 ‘인간이 원죄’

2021년 3월 하순, 지난 27년 동안 오리무중이었던 미국 흰머리독수리 살해범의 검거 소식이 논문으로 전해졌다. 사건은 1994년 아칸소주에서 마비 또는 경련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독수리가 목격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2년에 걸쳐 미국 곳곳에서 흰머리독수리 70여마리를 포함해 여러 조류가 더 희생되었다. 국조(國鳥)의 집단 사망 사건에 당연히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사체를 부검해보니 뇌의 백질에 작은 주머니(액포)가 많이 퍼져 있었다. 이 결과에 근거하여 일단 사인은 ‘액포성 골수병증’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치명적 질병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로 발만 동동 굴렀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 속에 자칫 묻힐 뻔했던 사건의 해결 경위는 다음과 같다.

현장 조사 결과 사건 발생 유역에서는 검정말과 함께 그 잎에 붙어사는 특정 시아노박테리아가 항상 발견되었다. 공교롭게도 시아노박테리아 가운데에는 독소를 만드는 종이 많다. 참고로 검정말은 연못이나 개울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물풀로 줄기 높이가 60㎝ 정도이다. 연구진은 문제의 시아노박테리아를 실험실로 가져와 배양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실험실에서 키운 시아노박테리아는 액포성 골수병증을 일으키는 독소를 만들지 않았다. 의문점 해결의 실마리는 화합물 정밀 분석에서 나왔다. 피해 현장에서 채취한 시아노박테리아에는 항상 브롬(Br) 성분이 포함된 대사물이 들어 있었다. 실험실 배양액에 브롬 성분을 추가하여 시아노박테리아를 키웠더니 같은 대사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물질을 실험용 닭에게 먹였더니 액포성 골수병증이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국조 폐사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고, 범인이 잡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호소

다음은 가상으로 들어본 시아노박테리아의 변론이다.

“주변에 검정말이 많기에 거기에 붙어살다가 속절없이 독소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족속 대부분은 이런저런 독소를 만듭니다.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평소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늘어난 만큼 독소량도 많아지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왜 많아질까요? 보통 자연수에는 미네랄 영양소가 늘 부족해 우리가 크게 증식할 수 없는데 말이죠.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인간이 버리는 폐수에 가끔 우리에게 필요한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곤 합니다.물풀을 먹는 여러 수생 생물은 자연히 우리를 먹게 됩니다. 우리가 만든 독소는 물에 잘 녹지 않아 잘 배출되지 않고 그 동물 몸 안에 축적되기 일쑤죠. 그래서 그런 동물을 먹잇감으로 하는 육식동물은 훨씬 더 많은 독소를 섭취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먹이그물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특정 화합물의 농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생물농축’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사건은 생물농축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도대체 그 브롬이라는 물질은 어디서 온 겁니까? 우리는 그런 걸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가만 얘기를 들어보니 인공 호수에 뿌린 제초제 성분 따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지은 죄를 부인하려는 게 절대 아닙니다. 다만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고, 모두에게 건강한 자연환경 보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고매하신 인간께서 비록 하찮게 여기시는 미물(微物)의 말이지만 부디 귀담아주시기 바랍니다.”

▶김응빈 교수

경향신문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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