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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미 20년 전쟁의 끝, 아프간 ‘과거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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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군 철수 공식선언

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버지니아주 알링턴국립묘지 내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이후 숨진 미군들이 안장된 ‘60구역’에서 헌화하고 성호를 긋고 있다. 알링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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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단 말이야?”

1991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옛소련의 철군 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대한 중앙정보국 개입을 보고받고 보인 반응이다.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맞서 국력을 동원한 대결을 벌여왔으나, 불과 1~2년 만에 미국 대통령은 그 땅에서 내전이 계속되는지도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 미국이 다시 10년 뒤 전 국력을 동원해 아프간을 침공해 20년 동안 전쟁을 벌이다가, 14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일방적 철군을 공식 발표했다.

아프간은 이상한 땅이다. 근대 이후 제국들은 이 땅에서 열전을 벌이다가 내버려두기를 반복했다. 아프간이 ‘제국의 무덤’이 된 배경이다. 아프간의 전략적 가치 판단이 ‘과대평가’와 ‘무책임한 방기’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오간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착시’ 때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9월11일까지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완료하겠다고 못박으며, 아프간의 운명은 반복됐다. 미국이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제거하려고 아프간을 침공한 지 20년이 흘렀으나, 지금 아프간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탈레반은 부활해 국토의 3분의 2를 장악했고, 미군이 철수하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은 시간문제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역사상 가장 긴 20년간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가장 비싼 2조달러의 전비를 쏟아부었는데, 왜 아프간은 그대로인 것일까?

강대국의 ‘지정학적 착시’ 반복된 ‘제국의 무덤’ 아프간


아프간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아리안족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 티무르, 인도의 마지막 제국인 무굴제국 등 모두가 아프간을 통해 인도를 침공했다.

해양세력인 영국만이 유일하게 인도양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왔다. 영국은 19세기 들어 팽창하는 러시아가 인도양과 인도까지 진출할 것이라는 ‘러시아포비아’(러시아 공포증)에 사로잡혔다. 1835년 영국은 러시아 진출을 막으려고 아프간 침공을 단행했다. 4년 뒤 아프간 부족들의 반란으로 영국군 4500명과 군속 1만2천명이 전멸했다. 군의관 한명만이 생환했다.

영국은 1878년과 1919년에도 침공했다. 2차 침공에서도 1만명이 전사했다. 영국은 세 차례의 전쟁 끝에 아프간을 중립국으로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다. 19세기에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다툰 영-러 ‘그레이트 게임’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아프간을 침공하거나 점령할 전략이 없었다. 오히려 아프간을 침공한 영국이 중앙아시아로 밀고 들어올 것으로 우려했고, 영국의 아프간 점령을 교란했다.

아프간의 지정학적 가치를 둔 강대국의 자기충족적인 예언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서 재현됐다. 1970년대까지 아프간은 배낭족이나 히피들이 선호하던 은둔의 여행지였다. 1978년 4월 군부 쿠데타로 아프간은 열전의 땅으로 바뀌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성립된 사회주의 정권은 곧 아프간 부족들의 봉기로 와해 위기에 빠졌다. 소련은 1979년 12월25일 전면적인 침공으로 사회주의 정권 구조에 나섰다.

미국 역시 개입에 나서, 무자헤딘(성전을 수행하는 전사를 뜻하는 이슬람 무장세력) 운동을 지원했다.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대거 무자헤딘으로 참전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이다. 소련은 아프간 수렁에 빠졌다. 개혁개방을 내걸고 집권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9년 2월15일 일방적 철군을 완료했다. 그날 소련군 사령관 보리스 그로모프는 테르메즈강 우정의 다리를 넘어 소련 땅에 발을 디딘 뒤 “내 뒤로는 단 한명의 소련군도 없다”고 선언했다. 소련은 1만5천명의 소련군과 200만명의 아프간 주민 주검을 남긴 아프간을 다시는 쳐다볼 수 없었다.

소련 철군 뒤 아프간은 무자헤딘 군벌 사이의 내전 터로 전락했다. 미국 대통령도 그 내전의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아프간은 잊혀갔다. 그동안 미국의 무자헤딘 운동 지원 속에서 성장한 탈레반이 내전에서 승리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둥지를 틀었다.

알카에다가 2001년 9·11테러를 감행하자, 아프간은 다시 열전의 땅으로 변했다.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한달 만에 붕괴시켰다. 12월 미군은 파키스탄 접경 토라보라 전투에서 빈 라덴 제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위해 아프간에 전력을 묶어두지 않으려 했다. 미국한테 아프간은 다시 2류 전장으로 바뀌었다. 곧 탈레반도 부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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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 공약과 증파 반복한 미국


미군 침공 때 탈레반은 정부군 입장이어서 정규전에 임할 수 밖에 없어, 참패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광막한 황야와 산악으로 돌아가 게릴라 부활하자,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 무자헤딘 앞에 무력했던 소련군처럼 미군도 탈레반 앞에서 무력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귀환한 탈레반 앞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10만명까지 미군 증강안을 발표했으나, 별무소득이었다. 2011년 철군 계획이 무산되자, 2012년 1월부터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이 시작됐다.

이 평화협상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졌다. 중동전쟁 종식을 내걸고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철군 공약과 증파를 반복했다. 결국, 2020년 2월 미국과 탈레반은 2021년 5월1일까지 철군 완료를 합의했다. 이 합의도 지켜지지 않게 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선제적으로 철군을 선언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목적을 달성했나?


9월11일 철군이 과거처럼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아프간에서 미국의 목적이 달성됐느냐는 것이다. 빈 라덴은 사살됐고, 알카에다는 완전히 위축됐다. 탈레반도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끊었고, 이슬람국가(IS)에는 적대적이다. 하지만, 빈 라덴에 이은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자와히리는 여전히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은신 중이고, 알카에다가 완전히 붕괴되지는 않았다. 아프간에서 미국에 대한 위협이 재발할 것인지를 두고 정보기관은 단기적으로 불가능하나, 장기적으로 미지수라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탈레반이 문제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프간 정부와의 권력 공유를 위한 평화협상에 탈레반이 연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당장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외국군이 주둔하는 한 오는 24일 터키에서 열리는 미국과의 평화협상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탈레반 다시 국토 3분의 2 장악


소련군 철군 뒤와 같은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든은 미군 철군 뒤 아프간 정부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원하겠으나, 군사적 지원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미 아프간 정부군은 와해 중이다. 군과 경찰은 병력 이탈에 따른 자연적 감소율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서방 및 아프간 관리들의 지적을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탈레반은 몇달 전부터 도시를 포위하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정부에는 현재 2만~3만명의 특수군 병력이 마지막 버팀목이다. 매해 아프간군한테 지원하는 미국의 40억달러가 없다면 그마저도 유지하기는 힘들다. 미군과 정보기관은 철군 뒤 아프간 정부군이 기껏해야 몇년 버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탈레반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많이 순화됐다는 평가는 받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한 통치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여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개선됐다는 징후도 없다. 아프간이 탈레반, 현 정부, 기타 군벌이 난립하는 저강도 내전 터로 지속될 수도 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해 중앙정부를 선포해도, 그 장악력은 전국에 못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오는 9월11일 이후 아프간은 전후 현대사에서 최장기인 42년간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선뜻 대답하는 분석가들은 없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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