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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씨티은행 철수] 잠재 인수 후보 OK금융… ‘승자의 저주’ 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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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이 국내 소비자금융 사업 부문에서 철수하면서 보기 드문 ‘은행업 면허’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은행업계에서는 이 면허를 가져갈 유력 후보로 저축은행업계 2위인 OK금융그룹을 거론하는 가운데, OK금융그룹은 아직 논의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에서 시중 대형은행 M&A는 지난 2010년 11월 25일 이뤄진 하나은행과 한국외환은행 합병 이후 10여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은행업 면허는 M&A 시장에서 귀한 매물이다. OK금융그룹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1금융권 진출 기회가 언제 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16일 OK금융그룹은 한국씨티은행 소매부문 인수 의견에 대해 "그룹의 긍정적 시너지를 이뤄낼 수 있다면 경영적 판단 하에 검토할 가능성은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매각 조건이나 매각 방식조차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미리 인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OK금융그룹은 ‘러시앤캐시’를 중심으로 한 대부업으로 사세를 불리다 2014년 예주·예나래저축은행을 인수해 O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이후 2016년 씨티캐피탈과 인도네시아 안다라은행,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까지 차례로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최근에는 과거 주력 사업이었던 대부업을 청산하고, 계열사 OK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를 통해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 금융업 진출을 선언했다. 그 밖에도 증권사가 매물로 나오면 꾸준히 인수설에 연루될만큼 M&A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OK금융그룹은 2015년 LIG투자증권을 시작으로 2016년 리딩투자증권, 2017년 이베스트증권 인수를 시도했다.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제3금융권인 대부업에서 시작해 2금융권인 저축은행 업계 2위까지 OK금융그룹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종합금융사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증권사나 P2P보다 제도권 금융의 정점에 서있는 1금융권 은행 진출이 우선되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조선비즈

한국씨티은행 서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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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영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OK저축은행은 3위권 저축은행들과 시장지위 측면에서 큰 격차를 보일만큼 최근 급성장하는 금융사"라며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평균 총자산 증가율이 30% 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크고 있고, 지난해 당기순익도 1800억원대로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자금력도 늘어난 상태"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1금융권 은행업이 저축은행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면에서 까다로운 경향이 있고, 씨티은행 인력이 OK금융그룹의 핵심계열사인 OK저축은행 임직원 수보다 3배 정도 많은 ‘대형 매물’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2금융권에 속하는 저축은행이 1금융권 은행을 인수해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 역시 현실적인 걸림돌로 꼽힌다.

앞서 금융당국은 OK금융그룹은 증권사 인수를 두고 ‘대부업 중심인 사업구조를 고치라’는 이유를 들어 OK금융그룹에 ‘요건충족명령’을 내렸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 ‘요건충족명령’은 시정명령과 같다. 시정명령을 받으면 대주주 변경 승인 제약 사유가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사업구조를 문제 삼아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주주 적격성을 접어두더라도, 씨티은행의 인력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OK금융그룹이 인수를 하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씨티은행은 2017년 133개였던 점포를 올해 39개까지 줄였지만, 노동조합의 반대와 금융당국의 규제로 임직원 수를 같은 규모로 줄이지 못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없다면 OK금융그룹 핵심계열사인 OK저축은행 임직원 수(약 1100명)보다 많은 직원을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 직원 3498명 평균 근속연수는 18년으로, 이들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는 연 3604억원에 달한다.

이와 별도로 씨티은행이 전체 직원에게 미래에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을 뜻하는 확정급여채무 최소 8905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씨티은행 임직원 가운데 소매부분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정도라고 가정해도, OK금융그룹이 소매부문 인수를 할 경우 4500억원에 가까운 돈을 퇴직금으로 늘 쌓아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씨티은행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타 은행과 달리 근속연수에 비례해 퇴직금을 쌓는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아직 철수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결정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씨티은행이 OK금융그룹과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몸값은 얼마가 적당할지 평가하기는 이르다"면서도 "DGB금융그룹이나 KB금융지주처럼 OK금융그룹과 함께 거론되는 다른 인수 유력후보들은 이미 은행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어, 대주주 적합성 부분을 포함한 인수 경쟁에서 한 단계 우위를 점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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