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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오스카 후보' 윤여정, 연기만큼 빛나는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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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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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윤여정(74)이다. 원더풀한 연기로 또 말솜씨로.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은 빼어난 연기력만큼 수려한 언변으로 해외 영화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미국배우조합상(SAG)에 이어 12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 수상의 영예를 누린 윤여정은 각종 해외 시상식에서 37관왕을 달성했다. 26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시상식에서도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윤여정의 수상만큼 기대를 모으는 게 바로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한 ‘말’이다. 수상 소감, 인터뷰, 각종 발언 등 '윤여정 어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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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사진|영국 아카데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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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체하는 영국인들에게 인정 받아 기뻐"


영국 아카데미(BAFTA)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은 윤여정 특유의 촌철살인 유머를 대변한다. 할 말은 하는데, 고상하고 품격있고, 유머러스하다.

윤여정은 12일 ‘2021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뒤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해 시상식 소감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BBC, 할리우드 리포터, 버라이어티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은 작품상이나 주연상 수상자(작) 보다도 윤여정에 더 주목하며 “이 밤의 주인공”이라고 표현했다. 로이터 통신은 “윤여정의 농담 같은 수상소감이 시상식을 웃음으로 채웠다”고 했고, 인디펜던트는 “윤여정의 ‘고상한 체하는’ 발언에 시청자가 매우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그야말로 윤여정은 전체 시상식 시즌에서 우승했다”고 소감에 찬사를 보냈다.

버라이어티는 시상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윤여정의 수상 소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버라이어티는 윤여정에게 “칭찬이 아닌 수상 소감(하지만 매우 정확한 분석)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라고 물었고, 윤여정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수상 소감”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영국은 여러 번 방문한 나라이고 개인적으로는 10여년 전 캠브리지 대학에서 배우로서 펠로우십을 했다. 당시 학교를 다니면서 영국인은 고상한 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고상함은 안 좋은 뜻이 아니라 긴 역사만큼의 자부심이 있는 나라라는 것”이라며 “아시아 여성으로서 그런 점에서 영국인이 고상한 척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솔직한 느낌을 말했다”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그러면서 높아진 오스카 수상 가능성에 대해 “나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르니 그런 거 묻지 마라”라며 재치있게 답변해 다시 웃음을 안겼다.

앞서 SAG 수상 후 윤여정은 "동료 배우들이 수상자로 나를 선택해줬다는 것이 더 감격스럽다. 미국 배우조합(SAG-AFTRA)에 감사드린다. 이름이 정확한가? 내겐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디와이어는 이 소감을 SAG 최고 수상소감으로 꼽으며 “순수하고 여과되지 않은 정직한 순간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며 "어느 소감보다 명료했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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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사진|스타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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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사는 아들, 증오범죄 탓 오스카 가는 내 걱정”


윤여정은 또 할 말은 한다. 용감하고 날카롭기도 하다. 윤여정은 포브스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 범죄 문제를 꺼냈다. 윤여정은 "자신의 두 아들은 한국계 미국인인데,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아들이 오스카 시상식을 위해 미국에 가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며 아시아계 혐오 범죄를 언급했다.

윤여정은 “아들이 나이가 든 내가 혹시라도 증오범죄 공격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며 “이건 끔찍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최근 미국에서 특히 고령의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폭행 등 범죄가 이어진 현실을 아들의 걱정을 통해 짚었다.


“이혼이 주홍글씨...아들들 위해 어떤 역할이든 했다”


윤여정의 말은 그저 웃고 넘어가는 말장난이 아니다. 우여곡절 겪은 인생이 녹아 있다. 윤여정은 여러 인터뷰에서 결혼, 이혼, 연기 얘기를 들려줬다. 포브스와 인터뷰에서도 미국에서 결혼 생활을 했으며, 이혼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를 재개한 과거를 돌아보며 "끔찍했다"고 털어놨다.

윤여정은 "과거에는 이혼이 주홍글씨 같았다. 남편에게 복종을 약속해야 했는데 나는 그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TV에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내게 일을 주지 않았다"면서 "나는 아들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얻으려 했다. 20년 전 스타로 데뷔했을 때의 자존심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때부터 성숙한 사람이 됐다"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사람으로서 독립영화 하기 싫었다”


윤여정의 말이 다른 건, 배우 인터뷰의 흔한 '모범답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해진 얘기, 흠 잡히지 않을 얘기를 반복해서 하는 뻔한 인터뷰와 다르다.

윤여정의 이런 솔직한 달변은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가 펼쳐지기 전인 지난해 1월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기 시작됐다. 윤여정은 ‘미나리’ 상영 후 진행된 무대인사에 참석해 영화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한 한예리, 스티븐 연에 이어 마이크를 건네받더니 “다들 진지하다. 그런데 난 저렇게 진지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해 미국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난 한국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이 영화는 사실 하기 싫었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인데다 독립영화였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고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영화가 잘나왔다. 나는 늙은 여배우니까 이제 힘든 건 하기 싫다. 그런데 정이삭 감독이 기회를 줘 감사하다”며 진솔하고도 유머 넘치는 말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싫은건 싫다고, 감사한건 감사하다고 다 표현하는 윤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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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제공|판씨네마



“제가 영어를 잘 못해요”


윤여정의 말이 해외 영화인들을 웃기고, 공감하게 하는 비결은 '윤여정표 영어'에 있다. 유창하진 않지만, 쉬운 표현으로 희로애락과 유머를 충분히 전달한다.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조연상을 수상한 뒤 “해외에서 이렇게 알려지게 될지 몰랐다. 영광스럽고, 특히 동료 배우들이 수상자로 선택해줬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제가 지금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어를 잘하지 못 한다”며 후보에 함께 선정된 배우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해 동료들을 감동하게 했다.

이에 동갑내기 미국 배우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는 윤여정의 말에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고, 영국 배우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은 양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완벽하다!(Perfect)”고 찬사를 보냈다.

윤여정은 tvN ‘윤식당‘, ‘윤스테이’나 해외 인터뷰 등에서도 “남의 나라 말은 끝이 없다. 내가 거기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완벽하게 할 순 없다. 그래서 내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안 본다. 틀린 걸 알기 때문에. 아우 짜증난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해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의 쉽고도 편안한 영어 사용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특히 막힘없는 그녀의 영어에 대해 외신과 영화 관계자들은 “그녀의 영어엔 자연스러움이 있다. 외국어란 게 소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단 걸 증명하고 있다”며 “한국인이라고 한국말을 다 잘하는 게 아니듯, 오히려 웬만한 미국인보다 듣기도 말하기도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지난해 오스카 최고의 스타, 봉준호 감독에 이어 윤여정까지 “한국 영화인들은 모두 달변가냐”라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온다.

거침없지만 불쾌함을 주지 않고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는 내공이 돋보이는 윤여정의 말솜씨. 그 안에는 단단한 커리어가 주는 자신감, 특유의 솔직함, 나이와 국경의 장벽을 뛰어 넘은 자유로운 생각과 영혼이 담겨 있다. 전세계를 홀린 'K-할머니' 윤여정이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수상 소감처럼 개성있는 할머니 순자 역으로 열연했다. '미나리'는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수상이 유력하게 언급되는 윤여정은 지난 13일 시상식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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