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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그리스 신화에서 이어지는 와인 농법 [명욱의 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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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그리스의 대문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에서는 별자리를 보고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와인으로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로마네 콩티’와 충북 충주 작은 알자스 양조장의 ‘레돔’이 있다. 사진은 ‘일과 날’의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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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명의 어마어마한 문호가 있다. 한 명은 호메로스(Homeros), 또 한 명의 인물은 헤시오도스(Hesiodos)이다. 호메로스의 대표작은 바로 일리아드(Illiad)와 오디세이(Odysseia). 헤시오도스는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등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신들의 계보(신통기)’와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한 ‘일과 날(Work and Days)’을 썼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신을 만들어 그리스인들에게 주었다고 평가했다.

헤시오도스의 저서 중 ‘일과 날’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인간의 모든 것이며, 일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동은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하지 않는 것이 창피하다고 서술했다. 흥미로운 건 노동에 대해 역설한 ‘일과 날’에 포도와 와인 이야기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바로 별자리를 보고 와인을 만들라는 것. 예컨대 ‘일과 날’은 2월 아쿠투로스(Arcturus·목동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가 저녁에 뜨는 날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하며, 시리우스(Sirius)와 오리온(Orion)이 중천에 오르고 장미 손가락을 지닌 오로라가 아쿠투로스를 볼 수 있을 때 포도를 수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도 수확 후에는 열흘 밤낮 햇볕에 내놓고 닷새 동안 그늘에 두어야 하며, 여섯 번째 날에 기쁨이 가득한 디오니소스(Dionysos·와인의 신)의 선물(와인 원액)을 길어서 단지에 넣어야 한다고 썼다.

더불어 신기하게도 이러한 농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바이오다이나믹 와인(Biodynamic Wine)’이다. 1920년 독일계 인지과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에 의해 정립된 유기농 자연 농법의 일종으로, 순환형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유기농법은 생산물이 유기적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 바이오다이나믹은 생산 시스템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한다.

이 농법은 농업력이라는 달력에 맞춰 진행한다. 달의 인력이 강한 만월에는 수확을 하지만 와인 병입을 하지 않는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별의 움직임을 보고 준비를 하기에 그것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다이나믹은 뿌리의 날, 꽃의 날, 잎의 날, 과실의 날로 기간을 나눠 시기에 맞는 농업을 하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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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의 날’에는 농사를 시작하며, ‘뿌리의 날’에 가지치기를 한다. ‘꽃의 날’에는 쉬고, ‘잎의 날’에는 밭에 물을 채운다. 이러한 달력은 와인을 마시는 날에도 적용된다. 뿌리의 날과 잎의 날에는 와인을 마시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뿌리의 날은 와인 맛에서 흙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며, 잎의 날은 물이 와인 맛을 옅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와인이 그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로마네 콩티(Romanee-Conti)’다. 국내에도 있다. 프랑스인 도미니크와 신이현씨가 이 방식으로 충주에서 만들고 있는 사과 발효주(시드르) ‘레돔(LESDOM)’이다.

결국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은 인류가 자연 속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농법으로, 한 번 더 환경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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