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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건강한 가족] "노년층 희귀질환 '심장 치매', 고령화 시대에 치료 대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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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곤란 등 흔한 증상, 오진 쉬워

심장 이식해도 70~80%는 재발

효과적인 먹는 약 나왔지만 비싸

중앙일보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과장이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의 발생 과정과 치료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인성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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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석근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과장



희귀 질환자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발생 가능성이 낮다 보니 질환 자체를 몰라 의심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진다. 의심하기 어려운 건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이라는 질환이 있다. 주로 고령에서 발생하고 치료받지 못하면 3년 남짓밖에 살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됐다. 하지만 낮은 인지도에 따른 조기 진단의 어려움과 비용 등 치료의 걸림돌이 남아 있다. 지난 14일 만난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홍석근 과장(장기이식센터장)은 ATTR-CM이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에서 주목해야 할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ATTR-CM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Q : 질환 이름 자체가 생소한데, 어떤 질환인가.

A : “혈액에는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혈장단백질이 있다. 혈액 속에서 갑상샘 호르몬과 비타민A의 일종인 레티놀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은 4개의 입자가 결합한 사합체 구조인데, 어떤 이유에서든 이 사합체가 분리돼 떠돌다 각 장기에 침착되면 장기의 기능이 떨어진다. 이런 과정으로 심장 근육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ATTR-CM’이다. 단백질 형태에 이상이 생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장기나 조직에 쌓여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을 아밀로이드증이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다. 결국 심장 기능이 쇠약해져 심부전이 된다. 심부전의 원인 질환이다.”

Q : 발생 과정을 보면 치매와 비슷해 보인다.

A :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여 신경독성을 유발하고 결국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질환이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심장에 생기는 치매’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Q : 어떤 사람이 생기나.

A :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TTR의 사합체 구조가 ‘단백질 퇴화(노화)’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깨진다. 각각 ‘정상형(자연형)’과 ‘유전성(가족성)’이라고 부른다. ‘정상형’ ATTR-CM이 압도적으로 많다. 환자 10명 중 9명이 정상형, 1명이 유전성이다. 정상형의 경우 주로 65세 이상에서 발병한다. 고령이라면 걸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매처럼 사람이 오래 살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 중 하나다. 언제 환자가 급속하게 늘지 알 수 없다.”

Q : 근데 진단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A : “증상이 너무 일반적이다. 대표 증상이 호흡곤란과 피로감이다. 확진까지 오래 걸린다. 심부전의 원인 질환인 만큼 환자 대부분이 심부전 환자다. 의사도 감별이 쉽지 않아 이뇨제 처방 등 단순 심부전으로 보고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호전되다 다시 악화한다. 또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ATTR-CM을 파악하지 못해 판막 수술 후 나아지지 않는 환자도 있다.”

Q :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가 쉽지 않겠다.

A : “그래서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이 질환에 대한 인지도를 제고해야 한다. 병명조차 모른 채 사망하는 환자도 있다. 핵의학과에서 전신 뼈 영상 검사(Bone scan)를 통해 확진한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의 기대여명은 3.5년에 불과하다.”

Q : 효과적인 치료법은 있나.

A : “심장 이식이 치료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장기 이식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만 이 질환에선 아니다. 심장을 이식해도 70~80%는 전처럼 아밀로이드가 다시 축적돼 재발한다. 심장 이식과 동시에 자가줄기세포 치료를 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적용 대상이 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결과도 좋지 못했다. 근데 다행히 최근 효과적인 치료제(경구약)가 개발됐다.”

Q : 어떤 약이고 효과는.

A : “타파미디스(상품명 빈다맥스) 성분의 치료제다. 2019년 미국에서 출시돼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다. TTR 단백질이 깨지지 않도록 안정화하는 기전의 약이다. 유전성과 정상형 모두에서 효과가 확인됐다. ATTR-CM 환자 44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다기관, 이중맹검 3상 임상연구 결과, 타파미디스 투여군의 사망률은 29.5%로 위약군(42.9%)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 수명 연장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일한 치료제다.”

Q : 환자들이 혜택을 많이 보겠다.

A :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증 질환 신약이 그렇듯 비용 부담이 크다. 한 달에 약값만 1000만원 정도 든다. 실제로 비용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많다. 최근에도 84세, 92세 환자가 모두 치료를 포기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 약은 더 이상의 진행을 막는 기전이지만 실제로 써 보면 심장의 자연 치유력이 더해져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 환자 수가 적고, 심부전으로 고생하는 환자라 목소리가 작은 데다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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