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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동물성원료' 젓갈에 발목 잡히나... EU 새 규정에 김치수출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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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EU 수입규정, 동물성 원료 극미량도 인증 의무화
인증받은 젓갈업체 쓰는 기업은 대상·CJ뿐
김치업체들 “영세 젓갈업장에 인증 강제 어렵다”
한국일보

이하연 김치 명인(대한민국 김치협회 회장)이 17일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어린이들에게 김치 담그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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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으로 면역력 강화 식품인 김치가 다시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국산 김치의 해외수출에 악재가 생겼다. 유럽연합(EU)이 이달부터 복합식품 수입 규정을 강화하면서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식품은 인증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젓갈을 부재료로 사용하는 김치도 이 규정이 적용되지만 영세한 국내 젓갈업체 대부분은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라 김치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동물성 원료가 극미량이라도 포함된 복합식품은 ‘EU수출작업장등록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내용의 개정 EU 복합식품 수입규정이 오는 21일 발효된다. 한우사골로 육수를 낸 김치나 각종 젓갈을 넣은 김치는 이 규정에 따라 통관 과정에서 인증서를 제출해야만 수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달 15일 기준 젓갈 제조업체 인증서를 EU수출작업장에 등록한 업체는 대상과 CJ 단 2곳뿐이다. 유럽에 김치를 수출하는 국내 김치·젓갈업체 대부분은 당장 수출길이 막힐 상황이다. 김재환 세계김치연구소 중소기업지원실 선임연구원은 “EU에 수출을 하거나 추진 중인 김치업체는 납품을 하는 젓갈생산업체에 등록절차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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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김치를 수출하는 업체들의 현재 상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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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 생긴 김치 수출 “영세업체엔 그저 꿈일 뿐”


유럽 수출을 준비해온 김치업체들은 울상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유럽인들 사이에서 김치를 먹는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치업체들은 수출 증대 기회라 판단해 발 빠르게 준비에 나서 유럽 지역에 거래처도 확보했지만 새로운 규정에 가로막혔다. 경기 화성시 태백김치의 김준희 본부장은 “인증을 위해서는 시설투자는 물론 수백 가지에 달하는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젓갈을 구매하는 김치회사 입장에서 젓갈제조업장에 인증을 강제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영세한 젓갈업체들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액젓가공공장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우리 형편에는 그런 인증을 받는 게 불가능하고 거의 포기 상태”라며 인터뷰조차 완곡히 거절했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한 중견 김치회사 관계자는 “우리는 납품하는 젓갈회사가 인증절차를 밟고 있어 기존에 수출하던 김치는 문제가 없지만 규모가 작은 김치·젓갈업체에는 사실상 진입장벽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김치회사 종사자는 “대기업이 상생협력에 나서고 정부가 젓갈업체의 인증을 도와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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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주요 국가 김치수출 금액. 그래픽=신동준 기자


젓갈·한우사골 뺀 ‘비건김치’ 수출 대안될까


이달 15일 충북 청주시 세계김치연구소가 ‘EU 복합식품 수입규정 개정에 따른 김치 수출업체 대응’을 주제로 연 기술교류회에선 동물성 재료를 첨가하지 않은 비건 레시피 개발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비건김치’를 두고도 업계의 의견은 갈린다. 김치의 현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수출에 탄력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과 함께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리기 어렵다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김치회사 관계자는 “인증을 추진하는 동시에 비건김치도 준비하고 있다”며 “젓갈을 넣으면 더 맛있지만 빼더라도 유산균은 여전히 존재하고 김치의 효능도 유지할 수 있어 국제적 트렌드에 맞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건김치도 검역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재환 선임연구원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식품성 원료만을 사용하는 비건김치는 (규정상) 복합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새 규정과 전혀 관계없다”면서도 “그러나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HS)상 같은 김치에 해당하므로 검역은 이뤄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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