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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상상 초월 ‘대토보상’… 투기 세력 먹잇감 된 3기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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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판 된 공공개발 (상)

“보상권 넘기면 현금 선지급” 땅주인 유혹

현금 유동성 억제…대토 보상 무력화

국토부·LH 늑장 대응에 땅주인 혼란

대토업체, 선지급하고 개발이익 챙겨


한겨레

지난달 18일 하남시 춘궁동에 선지급을 한다는 대토업체 펼침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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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치(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대토업체가 70% 선지급하는 게 불법이라고 해요. 그런데 대토업체들은 자기들이 편법을 통해서 줄 수 있다고 꼬시는 거야. 그런데 불법이 아니면 계약서를 줘야 하잖아, 그걸 안 줘. 준다고 약속만 하고 한 부씩 나눠 가져야 하는 계약서를 안 준다니까.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하남 교산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

지난달 18일 찾은 경기도 하남 교산 새도시 예정지 일대는 ‘대토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70% 선지급’ 조건으로 대토업체와 계약한 토지주 행위를 불법화한 ‘진선미법’(부동산투자회사법,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둔 탓이었다.(3월24일 국회 본회의 통과) 이날 하남시 춘궁동 대책위 사무실에는 대토보상과 관련해 불법·편법·합법의 경계를 묻는 토지주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선지급은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하는 엘에이치의 펼침막이 걸린 곳에서 불과 버스로 두 정류장 지난 곳에 ‘4월 선지급’을 약속하는 대토업체의 펼침막이 버젓이 나부꼈다. 대책위를 찾은 한 70대 부부는 “대토업체 다섯 군데가 말이 다 다르고 토지주들 상담해주는 세무사, 변호사도 합법이다, 아니다 말이 다르다. 엘에이치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 좋으련만 대토 과정이 엉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적 공분을 불렀던 ‘엘에이치 사태’가 대규모 공공개발 과정에서 투기 행위를 한 공직자 개인의 일탈 문제로 축소된 가운데, 3기 새도시 대토보상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엘에이치라는 조직이 대규모 공공개발 과정에서 저지른 ‘원죄’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원주민 재정착과 현금 유동성 억제라는 취지로 도입된 대토보상 제도가 금융을 동원한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고 만 것이다.

■ 대토보상 해도 현금이 풀린다?


대토보상은 공공개발로 자신의 땅이 수용되는 토지주에게 현금 대신 개발 이후 땅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 규모로 책정되는 토지보상금(현금)이 시장에 풀리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007년 도입됐다.

하지만 ‘현금 유동성 억제’라는 목표는 금융기법을 동원한 대토업체들에 의해 일찌감치 휴지 조각이 됐다. 하남 교산을 비롯해 대규모 공공개발이 이뤄지는 곳마다 판을 친 ‘70% 현금 선지급’이 주범이다. 예를 들어 토지보상금이 10억원으로 책정된 토지주가 10억원 전액(100%)을 대토신청하면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은 ‘0원’이다. 대토업체는 이런 토지주에게 접근해 70%에 해당하는 7억원을 현금으로 미리 지급하고, 대신 ‘대토보상권’을 가져간다.

대토업계에서는 과천 지식정보타운(대토보상 신청 액수 1904억원), 서울 수서역세권(1597억원), 고양 장항(1982억원), 구리 갈매역세권(1819억원), 성남 복정(2803억원), 성남 금토(1323억원) 등 6곳에서 이 같은 불법 선지급이 횡행한 것으로 보는데, 만일 여기서 70% 비율로 선지급이 이뤄졌다면 그 액수만 8천억원 규모(6곳 전체 대토보상금액 1조1400억원)에 이른다. ‘현금 유동성 억제’라는 대토보상 제도의 존재 이유가 불법 선지급으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이런 불법행위는 토지주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강제수용을 당하는 현지 거주 토지주는 거주지 이전과 생계유지를 위해 당장 현금이 들기 때문에 대토보상권을 유동화할 필요를 느끼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사람들은 토지담보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아, 대출금을 갚기 위해 선지급을 통한 현금 조달을 원할 수 있다. 이런 토지주들을 상대로 ‘선지급을 받으면 필요한 현금이나 대출 상환 문제를 해결하고, 대토도 100%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토지주와 엘에이치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이 바로 대토업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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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토업체들의 ‘신박한’ 묘수


대토업체는 토지주에게 지급하는 수천억원대 자금을 어디서 마련할까. 대토업체의 탈법과 편법을 오가는 금융기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현행 토지보상법이 ‘대토보상권’ 전매를 금지하고 있는 점을 교묘하게 악용해, 대토보상을 신청한 주민들이 1년 뒤 대토보상권을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대토보상 현금전환권)를 담보로 내세워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는 식이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2015년 수도권 내 노른자 땅인 ‘과천 지식정보타운’ 개발 때부터 이런 불법 대토가 횡행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와 엘에이치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이 같은 탈법 행위가 덜미가 잡힌 건 지난해 1월 과천 주암지구에서다. 당시 수백억원대 대출이 ‘불법’이라는 국토부 유권해석이 나왔음에도 대토계약은 취소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이들의 행위를 명백하게 불법으로 볼 수 없는 상태였고, 벌칙 조항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엘에이치 과천사업단 관계자도 “법 규정도 명백하지 않았고 토지주들의 피해가 우려돼 불법 요소를 해소하고 대토계약을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이후 대토업체의 금융수법은 다시 한번 ‘진화’한다. 바로 ‘대토리츠’를 이용한 방식이다. 대토보상권을 주식으로 현물출자해, 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묘수’를 찾아낸 것. 대토리츠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해 기존의 불법 대출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런 ‘신박한’ 해법은 널리 확산돼 지난해부터 공공개발 현장에서 다수의 대토업체들이 이 방식을 차용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진선미법’은 바로 이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 대토업체와 투기꾼의 ‘상생’…70%의 비밀


불법 선지급을 통해 대토업체들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수도권의 한 사업지구에서 토지주와 체결한 대토계약서 중 ‘사업이익의 분배’ 조항을 보면, 토지주는 대토보상금의 30%에 해당하는 수익을 분배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애초 토지보상금 100%를 대토신청했는데 30%만 받는 이유는, 선지급받은 70%에 대한 권리가 대토업체한테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토업체는 선지급해준 비율만큼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대토업계 한 관계자는 “70% 선지급을 받으면서 그게 자기 권리 70%를 넘기는 거라는 것을 모르고 받아가는 토지주들도 상당수였다”며 “대출금 상환이나 이주비, 생활비 등 현금이 우선 필요한 토지주의 처지를 이용해 자기 돈 안 들이고 개발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개발을 통해 조성된 땅은 지속적으로 땅값이 상승한다. 게다가 엘에이치는 대토용지를 일반적으로 민간에 매각할 때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므로 수익률이 훨씬 높다. 대토업체 ㅁ사의 홍보 브로슈어를 보면 주상복합용지나 상업용지로 대토를 받을 경우 예상 수익률을 300~400%까지 제시하고 있다. 대토업체 한 관계자는 “수익이 100% 이상 난다고 보면 된다”며 “토지주에게 선지급하느라 일으킨 대출을 상환하고도 무조건 수익이 남는 구조”라고 말했다.

얼핏 보면 현금이 필요한 토지주들과 대토업체가 ‘상생’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법하다. 특히 토지담보대출을 통해 땅을 산 ‘투기꾼’들에게 대토업체의 이런 모델이 매우 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토지(70%)는 주택(40%)보다 담보인정비율이 높아 대출을 통한 투기가 이뤄지기 마련인데, 70% 선지급을 받으면 대출금 상환도 하고 대토를 통해 향후 발생하는 대토수익의 30%도 가져갈 수 있어서다. 불법 선지급 비율 70%가 토지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 70%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광명·시흥 새도시에 투기한 엘에이치 직원들이 과감하게 토지담보대출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도 공공개발 현장에 만연했던 대토업체들의 불법행위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부 대토업체는 ‘선지급’ 말고도 ‘선매입’이라는 과감한 방식까지 활용하기도 했다. 선매입은 토지주에게 보상액의 100%가 넘는 현금을 지급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토지주가 향후 발생할 대토 개발이익에서 가져갈 수익이 ‘0’이 되고, 수익 전부를 대토업체가 챙겨갈 수 있다. 대토보상권을 ‘딱지’로 사들인 명백한 불법 전매행위다. 이들은 보상액의 110~120%를 주고 대토보상권을 사들였다. 대토보상을 하면서도 이보다 더 많은 현금이 시중에 풀리고 강제수용당한 토지주가 개발이익을 가져가지도 못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게 되는 비밀이다.

하남/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인터넷 한겨레 경제섹션 4월19일자 <상상 초월 ‘대토 보상’…투기 세력 먹잇감 된 3기 신도시>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기사에 언급된 ㅈ대토업체는 “부동산투자회사법(진선미 법) 개정 전 사업현장에서 시행된 현금 선지급은 당시 법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고, 최근 법 개정 이후에는 토지주와 개발사업약정을 체결하고 신용대출로 현금을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서 시행 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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