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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당한 성과 보상 안되면 못참아"… 노조 만들거나 떠나거나 [탈이념 20대, 한국사회를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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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산업계
현대차·LG전자·현대重 등
MZ세대 사무직 노조 결성 붐
공정 평가 기준 마련에 초점
SNS로 소통·의견 교환 활발
불합리하면 당당히 해결책 요구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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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MZ세대(1980년 초~2000년대 초) 쇼크'가 산업계 전반으로 몰아치고 있다.

최근에는 '블루칼라' 노동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동조합이 젊은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결성되고 있는 가운데 강성 노조로 알려진 현대중공업에서도 MZ세대가 중심이 된 사무직 노조 결성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MZ세대 중심의 노조는 이전의 정년보장·임금인상을 위한 과격한 노동운동이 아닌 '공정'한 평가기준 마련을 위한 회사와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이트칼라 중심 노조 결성 '활발'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내 '현대중공업그룹 사무직 공동행동'이란 모임이 이날 1호 선전물을 SNS 오픈 채팅방을 통해 배포했다.

국내 대표 '중후장대' 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 내에서 처음으로 사무직 중심의 노조 결성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이 오픈 채팅방엔 현재 사무직 700여명이 모여 그간 생산직 쪽으로 기울어졌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비판하고, 근무시간 준수 등 사무직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제조업체에서 사무직 노조 결성 움직임이 활발하다.

생산직 중심의 제조업 카르텔에서 소외됐던 사무직이 '공정'의 가치에 민감한 MZ세대를 주축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도 사무·연구직 직원들 중심의 'HMG 사무연구 노조'(가칭)가 이달 중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노조 설립을 위해 개설된 네이버 밴드엔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계열사 직원 4400여명이 가입해 있다. 이들 대부분은 30대(76%)로 생산직 중심의 임금협상에 불만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금호타이어 사무직도 마찬가지 이유로 노조를 설립했고, 앞서 지난 3월에는 LG전자 4년차 연구원이 사무직 중심의 노조를 결성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 설립을 자문한 김경락 대상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현재 조직되고 있는 사무직 노조는 머리띠 두르고 투쟁하던 기존 노조에 거부감이 있다"며 "세련된 방식으로 성과 평가기준을 확립하자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엔씨) 등 인터넷·게임업계를 비롯해 테크 스타트업이 주축이 된 MZ세대는 '이끌거나(리더십), 따르거나(팔로어십), 떠나거나(이직)'가 확고하다는 평가다.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업무 성과 및 역량에 따라 팀 리더나 임원이 되는 한편, '자율과 책임' 기조 아래 팔로어십도 분명하다. 특히 회사와 팀 목표 및 비전에 공감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팔로어십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본인의 역량을 높게 평가해주는 곳이라면 동종업계 이직이나 창업 등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른바 '평생직장'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에 따라 넥슨, 엔씨, 넷마블 등 게임업계 '빅3'는 장기근속 포상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A업체 관계자는 "MZ세대는 회사 성장에 앞서 개개인의 성장과 비전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즉각적인 성과보상이나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지면 개인의 기술력과 몸값 등 대우해주는 곳으로 이직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MZ세대는 투명한 정보공개 등 온·오프라인 소통도 중시한다. 이에 따라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컴패니언 데이'와 '브라이언톡 애프터' 등 타운홀미팅을 통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직접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임직원과 질의응답도 한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불합리하다고 여겨진 부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중장기는 물론 단기적 성과 보상체계도 요구하는 양상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블라인드' 등 익명의 SNS가 발달돼 있기 때문에 내부 불만을 외부로 공유하는 사례도 많다. 국내 IT업체 관계자는 "이른바 '꼰대'로 불리는 이전 세대와 MZ 세대가 각각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이 달라서 크고 작은 충돌과 갈등도 발생한다"며 "팀장과 팀원, 팀원 간 서로 업무 피드백을 해준다면 평가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팩트 기반 소통을 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산업별 노조와 차별화

'MZ세대'를 중심으로 설립되는 사무직 노조는 기존 '중후장대' 산업별 노조와는 활동방향이 다르다.

젊은 사무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만큼 조직의 방향도 기존과 차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MZ세대 노조는 현장에서 피켓을 들기보다 SNS로 소통하고 온라인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등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선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의 사무직 3500여명이 노조 설립을 전제로 '네이버 밴드'를 통해 가입 의향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현대차 임시집행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무직 노조 밴드 내 30대가 76%, 20대가 12%였다. 40대와 50대는 각각 10%, 2%에 불과했다. LG전자, 금호타이어, 현대차는 이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생산직 중심 노조가 있지만 이들과 접점을 만들지 않고 있기도 하다.

사무직 노조 등장에 대해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반색하는 한편,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젊은 사무직 종사자의 목소리를 담을 새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사무직 노조가 기존 노조를 기득권으로 바라보며 반감을 갖고 있는 거 같아 우려가 된다. 기존 노조 안팎에선 'MZ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쉽게 의견을 형성하고 유연하게 활동하는 조직형태가 될 거 같지만 아직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며 "노조는 기본적으로 연대가 중요한데 사무직과 생산직, 기업별로 조직화되는 것이 크게 볼 때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seo1@fnnews.com 김서원 김미희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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