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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스토리와인]보들보들한 감칠맛 속에 대항해시대 개척자 같은 강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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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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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와이너리. 사진=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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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 베라짜노는 전형적인 끼안티 와인이다. 약간 진한 루비빛을 띠는 이 와인은 잔에 서빙하는 순간 베리류의 향기가 주변으로 확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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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얼마 전 뉴요커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와인 중 하나인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를 접했습니다. 짧게 '베라짜노'로 불리는 이 와인은 미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생산되는 전형적인 끼안티 와인입니다.

라벨에 그려져 있는 갑옷을 입은 근엄한 얼굴의 기사는 이 와인이 생산되는 베라짜노 성의 주인이자 위대한 탐험가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입니다. 북미 대륙, 지금의 뉴욕과 미국 동해안을 발견해 콜롬부스, 바스코 다 가마 등과 함께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이끈 탐험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낮선 이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1964년 뉴욕 브루클린과 스테이튼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만들어졌는데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려 '베라짜노 대교'로 이름 지을 정도로 베라짜노에 대해 각별히 생각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뉴욕마라톤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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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반니 다 베라짜노.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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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짜노는 1485년 피렌체 공화국 끼안티에서 태어났지만 1506년 프랑스로 이주해 항해사가 됐습니다. 1523년 어느 겨울날 베라짜노는 "프랑스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찾겠다"며 프랑스 디에프에서 함선 4척을 이끌고 출발해 1524년 3월 북아메리카 뉴욕만, 나라갠셋만, 메인주 등 해안을 탐험한 후 그해 7월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은 모두가 모험정신이 강한 사람들이지만 베라짜노는 특히 '불굴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큰 폭풍을 만나 배 4척 중 2척을 잃고 1척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파됐지만 남은 배 1척을 이끌고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건넜기 때문이죠.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과 인도였습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도, 그에 앞서 1488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돈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도, 태평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선 베라짜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우선 대서양으로 나간 후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 남아프리카 대륙 끝자락 희망봉을 돌아 다시 아프리카 동해안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인도양을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지나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멀어도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대서양으로 나간 후 남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면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쪽 항로를 찾아 나섭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뜻하지 않게 유럽인에게 아메리카 대륙을 안겨주고 나중에 세계를 재패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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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양을 누비던 캐랙선. 범선의 한 종류로 콜롬부스도 베라짜노도 당시 이같은 형태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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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 11월28일 우리는 마젤란 해협을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석달하고도 20일 동안 신선한 음식 없이 지냈다. 우리가 먹은 비스킷은 벌레들이 좋은 부분을 다 갉아먹고 남은 가루에 불과했다. 배에 덧댄 소가죽을 며칠간 바닷물에 담가 둔 후 건져서 깜부기 불에 구워먹었다. 며칠동안 부패한 노란색 물을 마셨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곤경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은 위아래 잇몸이 모두 부풀어 올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19명이 이 병에 걸려 죽었다. 25~30명 정도는 팔, 다리 혹은 다른 부위에 병이 났다. 몸이 성한 사람은 없다."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 함대에서 마젤란이 사망한 후 선단을 지휘해 귀국한 안토니오 파가페타가 쓴 '최초의 세계일주'에서 당시 선박생활을 표현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선원들은 겨우 테니스 코트만한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면서 괴혈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괴혈병은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해 비타민C 부족하게 되면 생기는 병으로 대개 4주 정도가 지나서 입천장이 붓기 시작해 잇몸에 염증과 출혈이 생기며 이가 빠집니다. 이후 혈변을 보며 고열과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죽게 됩니다. 1700년대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배에 실어 선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면서 괴혈병이 사라졌지만 그 이전까지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수시로 마주하는 폭풍우와 거센 파도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대항해 시대 바다를 누비던 범선들은 길이가 기껏해야 30미터 정도의 정말 작은 배였습니다. 이처럼 작은 배를 타고 대양을 나간다는 것은 다시 땅을 밟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대서양의 바다를 누빈 개척자들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계속 나아가면 어느 순간 절벽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세상의 끝'이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공포와 대양의 거센 폭풍우, 괴혈병 같은 질병과 싸우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 그들은 심지가 남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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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도 그런 꼿꼿한 심지가 있는 와인입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5%에 까나이올로(Canaiolo) 5%를 섞어 만드는 베라짜노는 잔에 따라보면 산지오베제 와인이 가지는 전형적인 루비빛을 띠며 감칠맛 나는 붉은 계열의 과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미가 아주 좋으며 타닌이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줍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산지오베제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국제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들보들한 현대적인 끼안티 와인과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와인을 열자마자 입안에 조금 머금어도, 오랜 시간 디캔팅을 거쳐 마셔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특한 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부러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등산모자 속 얇은 철사같은 그런 강단이랄까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 출발을 하는 지인이 있나요.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를 닮은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함께 나누며 응원해보시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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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 2017(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 2017)는
-생산자: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Castello di Verrazzano)
-생산지:이태리 토스카나, 그레브 인 키안티 (Greve in Chianti)
-품종:산지오베제(Sangiovese) 95%, 카나이올로(Canaiolo) 5%
-알코올도수: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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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88-30에 위치한 베라짜노 레스토랑의 1층 테라스홀 모습. 지붕과 옆면이 온통 유리로 덮혀있어 비오는 날 특히 인기가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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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와인 레스토랑 '베라짜노'
우리나라에도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와 연관이 있는 멋진 곳이 있습니다. 2002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압구정로데오역 근처에 있는 국내 최초의 와인 레스토랑 '베라짜노'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그레베에 있는 베라짜노 와이너리가 공식인증한 레스토랑입니다. 식당 이름에 '베라짜노' 이름을 붙인 곳은 피렌체, 뉴욕, 서울 등 세계에서 단 3군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라짜노 내부에는 이탈리아 탐험가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의 초상화와 이탈리아 지도, 베라짜노 성의 모습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와인 전문 레스토랑 답게 300여 종의 와인을 갖추고 있으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1층에는 테라스홀이 2개, 2층에는 도서관과 세련된 응접실을 컨셉으로 한 룸이 3개가 있습니다.

베라짜노 레스토랑에 비 오는 날 한번 가보세요. 투명한 유리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포도나무 등 여러 관목들의 잎사귀가 빗물을 굴려 떨어뜨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 온갖 감성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셰프가 내놓는 파스타와 스테이크도 정말 맛있습니다.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수준급입니다.

지난 2007년 한 언론매체가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무려 16%가 '베라짜노'를 꼽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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