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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아파트 공시가격 권한 논란..."지자체가 맡으면 문제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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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시·도지사 권한 이양 공세에
국토부 난감...전문가들 "불가능할 것"
한국일보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시가격 현실화 공동논의를 위한 5개 시·도지사 협의회에 참가한 원희룡(왼쪽부터) 제주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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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논란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주도권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들은 공시가격 결정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난감한 기색이다.

야당은 지자체가 공시가격을 책정하면 신뢰성이 커진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정반대다. 지자체장이 객관적으로 공시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과거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이 추진된 적도 있으나 당시에는 지자체가 되레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19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며 공시가격 권한 지자체 이양·조정과 관련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투기가 없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여야 지자체들이 같은 입장일 것"이라며 "앞으로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자가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 건 야당 지자체장들이 연일 공시가격 공세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5개 시·도지사는 전날 공시가격 결정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할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공시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말 투명하고 세금 부과가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이다'라는 확신을 하게 해달라는 건의"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야당 지자체장들 주장에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이다. 지자체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 개정부터 난관이란 것이다.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부동산공시법)은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조사·산정하도록 정했다. 법 개정을 위해선 여당 협조가 절대적인데 더불어민주당에서 권한 이양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시가격 투명성 확대'란 구호의 근거도 불분명하다. 야당 지자체장들은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의 기준이 제멋대로라고 주장하나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맡는 게 더 위험하다고 본다. 연임 가능한 지자체장이 공시가격 인상·인하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선출직은 민원에 독립적일 수 없다"며 "지자체끼리 경쟁적으로 공시가격을 내릴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 행정에 큰 혼란이 초래되는 것도 권한 이양 가능성을 낮춘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뿐 아니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를 포함해 총 60여 가지의 목적에 활용된다. 지자체에 따라 공시가격이 제각각이면 공시가격이 기준인 행정도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공시가격을 책정하려면 미국처럼 분권형 국가로 바뀌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설사 권한 이양이 추진되도 지자체가 거부할 가능성은 있다. 20대 국회였던 지난 2019년 표준부동산 공시가격 조사권한을 지자체장에게 이관하는 부동산공시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지자체가 반대를 했다.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를 제외한 대다수 지자체는 업무량 증가와 지역 간 균형성·형평성 문제를 반대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로의 권한 이양은 공시가격 문제만 더 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공시가격을 결정하게 되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보다는 세율을 조정하거나 공시가격 현실화(시세 대비 공시가격) 기간을 길게 잡아 세금 부담이 급격하게 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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