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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호주 원주민도 美흑인 처지… 이주민보다 12배나 많이 체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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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불과한데도 수감자 셋中 하나
플로이드처럼 "숨 쉴 수 없다" 질식사도
'30년 제자리' 경찰·교정시설 차별 대우
한국일보

호주 시민들이 10일 시드니 도심에서 원주민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더는 구금된 원주민이 죽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드니=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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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호주 롱베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원주민 남성 데이비드 던게이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다가 숨졌다. 5명의 교도관이 그를 제압하다 결국 사망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미국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최후와 비슷하다. 던게이가 따르지 않은 교도관 지시는 당뇨가 있으니 비스킷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던게이뿐 아니다. 호주 원주민은 오랫동안 미 흑인처럼 차별을 당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두드러지는 부당 대우는 신체에 가해지는 구속과 폭력이다.

최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같은 규모(10만명)의 집단일 때 경찰에 의해 체포된 사람이, 주로 백인인 이주민(173명)에 비해 호주 원주민(2,088명)의 경우가 무려 12배나 많았다. 이는 수감자 수 격차로 이어진다. 올해 현재 원주민 수가 호주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지만, 교도소 안에서는 29%를 차지했다. 3명 중 1명꼴이다.

원주민은 물리력에 노출될 확률도 높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원주민 수감자 사망 사건에서 교도관의 62%가 무력 사용 절차를 지키지 않았는데 이는 비원주민(39%)의 1.5배가 넘는 수치라고 보도했다. 교도소 내에서 수감자가 적절한 치료를 제공 받지 못할 가능성도 원주민이 비원주민보다 3배나 높았다.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호주 정부가 ‘구금된 원주민 사망을 조사하는 왕실 위원회’(RCIADIC)를 꾸린 게 1987년이다. 1991년에는 RCIADIC가 실태 보고서로 차별 대우 실상을 전하기도 했다. 30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졌다. 2006년 이후 13년간 구속된 원주민은 61% 늘었다. 비원주민도 늘기는 했다. 그러나 증가율은 반토막 수준(36%)이다. RCIADIC 보고서 발표 30주년을 맞아 이달 10일 더는 구금된 원주민이 죽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성토하는 시위가 호주 전역에서 열리기도 했다.

차별의 핵심 원인은 부정적 편견이다. 지난해 6월 호주국립대가 공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호주 국민 75%가 원주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담당 연구원인 싯다르타 쉬로드카는 가디언에 “부정적 인식이 실생활에서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 감사(監査)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호주의 첫 원주민 하원의원인 린다 버네이(노동당)는 “호주 정부가 대대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이고 경찰 감사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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