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학계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사회적 리더로 가기 위한 모습"
"틍큰 기부로 문화유산을 지키고 의료지원 하는 것은 바람직"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활동 사진.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0.10.25.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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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은 기자 =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했던 재산의 60% 이상이 국고와 사회로 환원된다. 생전 약속한 1조원 대의 사재출연 약속을 넘어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통 큰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8일 이 회장 유족을 대신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유족이 1조원 규모의 의료 공헌과 미술품 기증, 상속세 12조 이상 납부 등을 통해 생전 고인의 유지를 받든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의 60% 가량을 사회에 내놓는 셈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 규모의 상속세 납부액이다. 평소 사회적 환원을 강조한 이 회장의 생전 철학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족들은 의료 지원에 1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인류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상황을 감안해 이에 대한 대응을 위한 7000억원을 기부한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예정이다.
또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이다. 기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된 후, 관련 기관들이 협의해 활용한다.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도 3000억원이 투입된다. 유족들은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이 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부금은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으로 지원된다.
이는 인간존중, 인류사회 공헌이라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을 따른 것이다. 이 회장은 생전에 주변으로부터 '최대 관심 사업이 반도체와 병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의료 분야를 특별히 챙겼으며, 특히 저소득층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이 회장 소유의 미술품 대다수도 국민들의 품에 안긴다. 유족들은 국보 216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총 1만1000여건에 2만3000여점의 미술품을 국립기관에 기증한다.
유족들은 지정문화재와 예술성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기관에 기증해 이 회장의 바람대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고 온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와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 등의 지정문화재 60건을 포함해 국내 유일 문화재 혹은 고지도 등의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또 김환기 화백의 '여인들과 항아리'나 이중섭의 '황소' 등 한국 근대미술 작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아울러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비롯해 샤갈, 피카소 등 유명 서양미술 작가들의 작품도 대거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달된다.
특히 예상을 깨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비롯해 '금동보살삼존상',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등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미술계에서는 삼성가에서 기증한 미술품 가치를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회장은 생전에 우리의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유출 우려도 제기됐으나 유족들은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재계와 학계는 삼성가의 이번 사회 환원에 대해 '역사에 남을 훌륭한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 등을 시작으로 재산의 최소 5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부의 사회 환원을 지속적으로 행해오고 있다. 삼성도 이윤추구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리더로 가기 위한 세계적 흐름에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유명 기업가들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행위가 글로벌 리더로 가야할 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리더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삼성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게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동안 정치권력과 연결해서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사회적 환원을 통해서 사회 구성원과 공감대를 이루면서 새출발한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다만 소모성이 아니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이런 통 큰 기부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의료지원을 하는 점이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선대회장의 사업보국 이념을 손자에서 실천하는 모습 또한 역사에 남을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고 호평했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으로 삼성을 일궈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한 이 회장은 다시 세금과 기부를 통해 마지막 사회공헌을 실천한 것"이라며 "특히 대규모 지정 문화재의 국가 기증은 이번이 최초로서, 국내 문화자산 보호는 물론 미술사 연구와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j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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